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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구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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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6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5-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정성준 교수의 밀교 인물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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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정성준 교수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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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2 07:54 조회 4,57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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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구히야

<대일경>의 주석으로 잘 알려진 붓다구히야(8세기, sangs rgyas gsang ba)는 <금강정경>에 대해서도 주석을 남겼고 그가 활동한 시대는 <금강정경>과 문수계 유가딴뜨라의 극성기에 해당한다. 시대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붓다구히야의 실질적 기록은 알려진 바 없지만, 기록에 남게 된 것은 티벳문헌을 중심으로 13세기 쫌된릭뻬뢸디, 부뙨, 따라난타의 역사기술, 그리고 닝 마빠의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붓다구히야의 출생지는 인도서부, 또는 바라나시 주변의 중인도 등 조금씩 다르지만 이름을 전하지 않는 왕가의 왕자로 태어났다. 붓다구히야가 수행의 발전이 있자 문수보살상이 그에게 미소를 짓고, 꽃이 새로 피고, 우유가 넘치는 등 상서를 보게 되었는데, 붓다구히야가 머뭇거리고 공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자 갑자기 검은 새가 그를 덮쳐 기절했다 깨어나 보니 문수보살상은 검게 변하고, 꽃은 시들었으며, 우유는 거의 다 말라가고 있었다. 붓다구히야는 정신을 차리고 남은 우유를 마셨는데 이를 계기로 붓다구히야는 공부의 진보가 있었다.

붓다구히야는 부왕의 허락을 받고 본격적으로 스승을 찾아나서 500의 학장으로부터 배웠고, 나란다대학에 입학했다는 일설도 있다. 일부는 <비밀집회딴뜨라>로 유명한 갸나빠다를 만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대일경>과<금강정경>의 주석에는 아직 후기밀교의 흔적은 미미하다. 닝마빠의 전승에는 붓다구히야는 인도 북서부의 우디야나를 방문하여 릴라와즈라로부터 유가딴뜨라와 환화망딴뜨라를 배우고, 게녠렉빠로부터 <일체여래밀의집경>을 전해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유가딴뜨라의 본궤에 해당하는 것들로 시대적 정황과 일치한다.

붓다구히야는 승원대학의 학장과 왕사를 지냈으며 제자로 위말라미뜨라와 슈리싱하 같은 이들의 이름도 전하지만 따라난타의 불교사는 수행의 겨를이 없는 바쁜 일과에 회의를 느끼고 붓다샨따와 함께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남인도 뽀딸라산을 찾아 나섰다고 전한다. 전설에는 산의 저변에 따라보살이 용들에게 설법 하였지만 근기가 되지 않아 일행에게 노인이 양을 모는 것만 보였고, 산중턱에는 비구지보살이 신인들에게 설법하였지만 일행에게는 소녀가 양과 염소를 모는 것만 보였다. 일행이 산 정상에 올랐을 땐 관세음보살 석상만을 보고 크게 실망했는데 동반했던 붓다샨따는 모든 것이 자신의 미망이 만들어낸 환영임을 깨달았지만 붓다구히야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대신 발이 땅을 닿지 않은 채 걸을 수 있는 신통을 얻었다고 한다. 하산을 마쳤을 때 다라보살은 노부인으로 변하여 일행에게 카일라쉬로 여행하여 수행할 것을 권하였는데 붓다구히야는 수행을 포기하고 와라나시에서 강사직을 수행하였다.

몇 해가 지나자 문수보살이 나타나 붓다구히야에게 카일라쉬산으로 가서 수행할 것을 재차 권하여 결국 히말라야를 넘어 카일라쉬산 근처 ‘까마귀 머리’라는 곳에서 수행하여 문수보살과 자유로이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이때 티벳은 티데축첸(704-754), 티송데첸(742-796) 치세 시에 있었는데 왕이 사절을 보내어 붓다구히야를 초청하였지만 문수보살과의 약속 때문에 사절들에게 금강계만다라와 환화망딴뜨라 관정을 수여하고, 근처 호수 마나사로와라에 금강계만다라가 출현하는 기적을 일으킨 것으로 답했다. 일설에 따르면 붓다구히야가 티벳에 갈 수 없었던 이유는 문수보살로부터 티벳에 가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는 예언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붓다구히야의 말년 행적은 확실한 것이 없으며 인도로 돌아와서 가르침을 계속 폈다는 것과 붓다굽타로 알려진 인물의 저서에 대해 그가 붓다구히야와 동일인물 여부에 대한 혼란이 있는 정도다. 티벳불교의 역사서는 티벳인의 신앙관이 반영되어 카일라쉬산으로의 여행과 티벳 통치자들의 관계는 확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인도와 티벳의 위정자들의 후원에 힘입어 <대일경>의 주석을 비롯해 주로 유가부 밀교의 주석들을 남긴 것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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