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궁중 잔혹사-꽃들의 전쟁>

페이지 정보

호수 24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6-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문화 서브카테고리 불교와 드라마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6-03 13:35 조회 4,324회

본문

<궁중 잔혹사-꽃들의 전쟁>
욕망의 파괴성과 허무함을 경험하다

27278411957b21683248ec571387969a_1591158908_0682.jpg
27278411957b21683248ec571387969a_1591158908_6638.jpg
 

우리나라 역사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충선왕이 큰아들을 죽였고, 조선시대에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16대 왕 인조 또한 아들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는 왕입니다.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처럼 구체적 기록은 없지만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여러 정황을 보면, 아버지에 의한 독살설이 유력합니다. 


JTBC에서 개국 초기 방영했던    <궁중 잔혹사 - 꽃들의 전쟁>은 인조(이덕화)의 소현세자 독살설이 주 골격입니다. 그런데 소현세자(정성운)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고, 만약에 임금이 되었다면 분명 성군이 되었을 인물입니다. 그런데 인조는 이런 소현세자를 죽였습니다. 소현세자가 자신의 권력에 방해요소라고 본 것입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청나라 왕실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인조는 청나라에서 언제든지 자신을 밀어내고 세자를 왕위에 앉힐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세자를 의심했고, 결국은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자신의 권력욕 때문에 아들을 죽인 것입니다. 하지만 인조가 자신의 죽음이 4년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들과 며느리를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인조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렇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욕망이었습니다. 욕망에 휩싸였을 때 그는 통제력을 잃었습니다. 왜냐면 그것이 온통 마음을 가득 채웠기 때문에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기에 오직 욕망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조는 자신의 장남인 소현세자와 며느리, 그리고 손자 둘까지 죽였습니다. 욕망이 얼마큼 부정적 감정이고 인간의 판단력을 흐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 가족을 죽인 후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급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욕 때문에 아들을 죽인 임금이라고 사람들이 뒤에서 자신을 욕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양심으로부터도 도망가고 싶었는지 후궁 조귀인(김현주)이 권하는 아편에 중독됐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욕망은 자기 아들도 죽이고 결국 자신도 죽인 것입니다. 


이는 인조의 후궁 조귀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첩의 자식으로 궁중에 들어온 한낱 후궁인 그녀가 이런 욕망을 가지면서 비극은 시작됐습니다. 조귀인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사람을 죽여야 했습니다. 왜냐면 아들인 숭선군 위에는 소현세자도 있고, 봉림대군도 있고,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장애물은 소현세자와 빈궁이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인조와 소현세자 사이를 이간질했습니다. 그 벌어진 틈 사이로 자신에게 기회가 올 걸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 왜냐하면 인조는 조귀인과 마찬가지로 소현세자를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조는 아들을 죽이고 갑자기 망가졌고, 결국은 너무 빨리 죽었습니다. 조귀인이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왕이 갑자기 죽으면서 그녀의 꿈도 물거품이 돼버렸습니다. 조귀인은 인조의 죽음 후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만약에 소현세자가 죽고 4년 후 자신 또한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조귀인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아마도 자신의 아들을 왕 위에 올리려는 무모한 욕망 같은 건 품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욕계라고 합니다. 인간이 갖는 욕망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애써 통제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욕망의 노예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이를 거스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궁중잔혹사 – 꽃들의 전쟁>의 정하연 작가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주로 드라마를 썼습니다. 욕망이 어떻게 자신을 비롯해서 주변까지 파괴하는가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욕망의 파괴성과 허무함을 경험하게 하는 드라마였습니다.

김은주 작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