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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에 빠진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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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8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7-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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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정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시인 김정수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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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7-09 15:17 조회 3,4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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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에 빠진 친구에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대뜸 “나, 회사에 안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공직에서 명퇴한 친구는 연봉도 꽤 높고 숙소까지 제공해주는 아주 괜찮은 조건을 제시한 회사에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일주일에 하루만 나오라는 새로운 제안도 거절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출근하라고 설득하자 잠시 말이 없던 그가 조용히 말했다. “나, 외로워. 아내가 죽고 삶의 의미가 없어졌어.” 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2년 전, 상처한 친구는 요즘 혼자 살고 있다. 장성한 남매가 수시로 집에 들러 돌봐주고는 있지만, 자식들이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줄 순 없다. 외출했다가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올 때의 쓸쓸함, 잠잘 때 옆자리의 허전함 등을 하소연하기에 넌지시 그러면 여자를 사귀어보라 했더니 “나, 아직도 먼저 간 아내가 많이 그립다”면서 “돈도 같이 쓸 사람이 있어야 벌 맛도 나는 법”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냐”는 친구는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심리학자 홈즈와 라헤 박사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게 되는 많은 사례를 스트레스 지수로 환산해 ‘스트레스 평정값’을 만들었는데 3위가 별거, 2위가 이별, 1위가 배우자의 죽음이었다. 별거나 이별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단절이지만 배우자의 죽음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만큼 큰 충격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특히 부부 사이가 좋으면 좋을수록 그 충격은 더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쉽지 않다. 일시적인 이별이라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품어볼 수 있다. 별거라면 관계가 회복되면 예전처럼 다시 사랑하며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이 갈라놓은 이별은 절망과 고통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유독 슬픔과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있는 줄 모르고, 멋진 곳을 가더라도 아름다운 줄 모른다. 

사랑도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의식이 한곳에 매몰되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그 하나의 상황에 쏠려 있거나 거기서 파생된 의식의 흐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 삶의 가치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도 없다. 심한 경우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동굴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이때 주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늪이든 동굴이든 일단 들어가면 혼자서 나올 수가 없다. 나오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곁에 있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돌봐주는 것도, 말을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독서도 한 방법이다. 등산이나 탁구처럼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종교에 귀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종교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죽음과 같은 인간의 이성으로 제어하기 힘든 것에 대한 개념과 생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형경 작가는 심리치유 에세이 『천 개의 공감』에서 “사랑은 봄의 밭갈이나 겨울의 자연적인 산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땅을 갈아엎고 기름지게 만드는 것처럼, 산불이 나서 숲의 밀도를 조절하는 것처럼, 사랑은 마음자리를 비옥하고 편안하게 만듭니다.”라고 했다. 친구에게는 봄에 갈아엎을 밭도, 산불이 날 숲도 없다. 오직 황무지 같은 마음만 남아 있을 뿐이다. 

친구는 지금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의 말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잘해줘. 죽고 나면 다 소용없어.” 조만간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겠다.


시인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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