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장례 산업에 불어오는 새로운 ‘웰 다잉’ 바람

페이지 정보

호수 25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10-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법상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건화사 법상 정사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10-12 10:13 조회 2,147회

본문

연재글: 연명의료 (29회)

장례 산업에 불어오는 새로운 ‘웰 다잉’ 바람
고령화시대, ‘생의 마무리’ 관심 증가, 불필요한 절차, 과도한 비용 감소세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누구나 겪는 죽음.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잘 죽는 것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으며, ‘웰-다잉(Well-Dying)’을 위한 장례가 등장하고 있다. 장례란 죽은 사람을 처리하는 과정과 절차를 지칭하는 용어다. 사회의 관습에 따라 장례 방법이 다르고, 종교적 배경이나 관념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한다. 우리의 장례 산업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고인돌부터 장례서비스 상조까지


우리나라의 장례의 기원은 구석기시대로 올라간다. 한반도 전역에 퍼져있는 고인돌이 대표적으로 당시의 장례를 보여준다. 고려시대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화장이 성행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는 엄격한 유교적 규범에 따라 매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대에는 묘지 증가, 후손들의 산소 관리 어려움 등과 같은 이유로 화장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2017년에는 국내 화장률이 83.4%를 넘어섰다.

이제 장례는 웰-다잉을 향한 변화로 이어지고 있는데, 웰-다잉이란 죽음을 스스로 미리 준비하면서 자신의 생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현상을 말한다. OO 손해보험은 ‘하늘 소풍 이야기’라는 웰-다잉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했는데, 유서를 남기거나 ‘관’에 들어가 보는 등의 사후 체험을 통해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노년을 보다 건강하게 보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처럼 웰-다잉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고품격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조회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웰-다잉 바람이 불면서 기존 장례문화에 대한 문제점도 하나 둘씩 제기되고 있다. 불필요한 절차와 과도한 비용 등이 장례가 가진 본래의 참 의미를 훼손시키는 요소로 손꼽힌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2019년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평균 장례비가 1,500만원, 비용 절감을 위해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 모신다고 하더라도 작은 함 한 칸에 1천만 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 


웰-다잉 장례식의 대표 트랜드


■ 작은 장례식

장례 절차를 간소화하고 합리적인 비용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데 집중한 장례다. 사회 관계망이 줄어들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진심으로 자신의 죽음을 추모하고, 기억해 줄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 추모 모임 형태를 띠며 가까운 지인에게만 부고 사실을 알리거나 습의, 관 등을 간소화하는 형태를 말한다.


■ IT기술을 접목한 장례식

한 장례회사에서는 레진 아트와 LED 기술을 접목한 장례용품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고인의 추모영상을 만들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블루투스 등 IT 디지털 아카이브 기술을 위패에 접목해 생각날 때마다 영상과 음성으로 고인을 만날 수 있는 기술 시스템이 개발되기도 했다.

고령화 사회로의 가파른 진입으로 장례 산업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웰-다잉’, ‘웰-엔딩’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는데, 언제가 됐든, 누가 됐든 죽음이라는 자체는 주변인에게 슬픔과 안타까움을 남기기 마련이다. 나의 마지막이 망연히 슬픔으로만 남지 않도록 우리의 웰 다잉을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의 생사는 죄(罪)의 경중(輕重)에 있다. 

사람의 생사는 병의 경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의 경중에 있는 것이다. 

생사해탈은 애착에서 벗어나 

수인사(修人事) 대천명(待天命)으로 

내가 선업정행(善業淨行)으로 살다가 죽는 것은 

조금도 애석함이 없다는 

사(死)에 대한 공포감이 없는 것이 

곧 생사해탈이요, 이것을 행함이 곧 불이다.

종조법설집 p.17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