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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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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11-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법문 서브카테고리 하현주 박사의 마음 밭 가꾸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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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11-05 13:18 조회 2,10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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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자비정원(慈悲正願)⑤ (회)

고통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

우리가 자비라는 이름 아래 행하고 있는 너무도 보편적인 자기중심적 행위들은 타인의 고통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없애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라 하겠다. 어떻게 하면 타인의 고통을 마주했을 때, 이에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


타인의 고통, 나의 고통?

다른 생명의 고통스러운 정서를 마주하는 일은 이전 호에서 살펴보았듯이 정서전염이라는 현상을 유발하게 된다. 즉, 타인의 고통을 보는 사람 역시, 그 고통스러운 정서에 노출되며 같은 정서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롭고도 중요한 현상이 펼쳐진다. 타인의 공포, 분노, 수치심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들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 정서전염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주의가 집중되는 ‘자기초점적주의 (self-focused attention)’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Wood, Salzberg, & Goldsamt, 1990). 

이처럼 인간은 타인의 부정정서에 노출되면,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과몰입 하게 된다. 이는 진화적으로 자신의 내부에서 생존에 위협이 될 만한 신호를 찾기 위한 적응적 가치를 지닌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비를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여간 번거로운, 극복해야 할 경향성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면, 부부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속으로는 해고당한 자신의 처지가 더 나쁘다며 자신의 문제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과 같다. 이렇듯 자신에게 주의가 몰입되면, 고통 받는 친구와의 연결은 끊어지고, 자신의 고통에만 빠져들어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는 상태로 빠지기 쉬워진다. 또 다른 경우로는 친구의 고통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한편,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고 안도하는 샤덴프로이드(schadenfreud: 타인의 불행에 기뻐하는 감정)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 앞에서, 자신의 고통으로 빠져드는 자기몰입적 태도와 함께, 나와 너의 고통을 서로 비교하고 견주는 태도도 일어난다. 즉 고통에 대한 평가적·판단적 태도를 말한다.   


고통의 실재에 용감해야

요즘 많이 회자하는 ‘나 때는 말이야’라는 태도는 상대의 고통은 나 때의 고통에 비하면 하찮다고 평가하는 태도이다. ‘이딴 일로 뭐가 힘들지’하고 스스로의 고통을 평가절하하는 태도 또한 고통에 대한 판단적 태도이다. 

고통을 겪게 되는 각자의 처지는 무수한 인연이 복잡하게 얽혀진 상태인데 그중 하나를 들어 비교한다는 것은 바닷물 가운데 물 한 방울을 두고 비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의 고통이 더 큰지를 견주고 겨루면서 자신의 우열을 가늠하려는 태도, 고통 받는 이들을 취약한 존재로 여기고 멸시하는 태도는 우리가 자비를 실천하기에 앞서 극복해야 할 뿌리 깊은 습관이다. 고통은 그 자체로 일어난 현상 그 자체이므로, ‘좋다, 나쁘다, 지나치다, 하찮다’라는 평가를 붙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경험해야 할 대상이자, 비판단적인 태도로 겸허하게, 어쩌면 경이롭게 바라보아야 할 삶의 진실한 순간이다. 

고통의 감각은 매 순간 달라진다. 어떤 고통은 찌르는 듯한 고통이고, 어떤 고통은 둔탁하게 느껴져 잘 알기 어려운 고통으로 다가온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의 감각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고통은 나쁘고 빨리 없애야 한다’는 판단과 관념을 벗어나 고통이라는 실재를 경험하는 것이다. 관념으로서의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실재 속으로 용감하게 들어가면, 그 고통은 자신의 몸 안에서 그 위용을 발휘하고는 이내 사라진다.


고통은 자기 쇄신의 과정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인 ‘자비체험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중, 자신의 삶 속에서 자비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연구 참여자들은 고통을 생각으로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태도를 강조한 바 있다. 

고통은 그 과정에서 자기를 쇄신하고, 변혁해가는 과정이다. 고통의 끝에 얻게 될 소중한 보물들을 발견하는 과정이기에, 이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귀한 여정 속에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자기중심적인 동기에 의해 고통을 섣불리 없애주려 하거나, 값싼 도움을 주며 자기만족에 빠지는 식으로 타인의 귀한 여정을 방해하지는 않아야 한다. 자비의 실천에 앞서 우리가 나와 타자의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보자.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면밀히 제련하지 않으면 서투른 칼질에, 도우려는 이도, 도움 받는 이도 함께 다치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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