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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까라(Sakara, 사로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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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1-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정성준 교수의 밀교 인물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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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교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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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1-12 15:22 조회 1,9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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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까라(Sakara, 사로루하)

인드라붓띠왕(687-717)의 아들로 유명한 빠드마삼바와와 전기가 교차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사까라(Sakara, 혹은 사로루하)이다. 인드라부띠왕은 오래도록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왕비는 꿈을 꾸었는데, 한 아이가 어깨에 해와 달을 짊어지고, 바닷물을 마시고 수미산을 삼켰으며 우주의 삼계를 밟고 있는 꿈을 꾸었다. 왕비는 학자와 바라문에게 해몽을 요청하여 머지않아 위대한 보살이 태어날 것이라 하였다. 

9개월 후 한 아이가 연꽃에서 태어났다. 여기까지는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밀교승으로 유명한 빠드마삼바와와 전기가 일치하지만 「84성취자전」에는 다른 사연을 전한다. 이후 왕과 왕비에게는 두 아들이 더 생겼지만 머지않아 죽었다. 사람들은 왕국을 가장 나이가 많은 사까라에게 승계토록 하였지만 왕국을 바로 밑의 동생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승려가 되기 위해 슈리다나로 떠났다. 

사까라는 도중 관세음보살을 만났는데 보살은 승려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수용신 성취의 방편을 아는지 물었고 이윽고 관세음보살은 사까라에게 수용신 성취의 수행을 전수하고 사라졌다. 빠드마삼바와가 슈리다나에서 수행하는 동안 라마라는 한 요기가 다가와 만약 사까라가 성취하면 자신에게도 가르쳐 달라는 조건으로 12년간 시봉하기로 약속하고 두 사람은 동굴에서 수행을 시작하였다. 당시 인도에는 큰 기근이 일어나 12년간 계속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라마는 스승의 수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식량을 조달하고, 자신은 스승이 남긴 음식으로 연명했다. 제자의 여윈 모습을 보고 지역에 기근이 든 사실을 알게 된 인 사까라는 강의 여덟 용왕들을 조복하여 큰 비와 식량, 수많은 보석을 하늘로부터 내리게 하였다. 

이후 스승이 열반에 들 즈음 제자 라마에게 자신을 이어 곧바로 정토에 들지 말고 세상에 남아 중생들을 구할 것을 명령하였고, 라마는 이후 세상에 남아 많은 절들을 세우고 불법을 홍포하였다.    

관세음보살이 사까라에게 수용신성취의 수행을 전한 것은 밀교의 유가와 깊은 관계가 있다. 성취법(sadhana)으로 알려진 수행의궤의 원류는 붓다의 선정에서 발견된다. 붓다를 삼계대도사라 일컫는 것은 욕계·색계·무색계를 넘나드는 선정에 통달했기 때문이다. 

선정이나 유가는 삼매를 통해 색계라는 의식의 우주를 여는 것이다. 계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법문이 「금강정경」이며 색구경천이 경전설법의 도량 아니던가? 사까라가 연꽃에 태어난 것은 3부족 가운데 연화부인 관세음보살과 깊은 관계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현교의 보살수행은 지관으로서 번뇌장과 소지장의 상속을 끊고 십지보살에 도달하여 법신을 구족하지만 관세음보살은 수용신의 수습을 통해 밀교수행을 담보하고, 수용신을 갖추어 중생을 구제토록 하였다. 대승불교에서 수용신을 갖추지 않으면 중생을 구하는 신변에 자재할 수 없다. 「대일경」에서 일체지지와 신변을 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84성취자전」을 통해 7, 8세기경 정착된 인도불교의 자취를 요약하면 나란다사, 위끄라마실라사 등의 승원대학을 통해 현밀의 불교학 연구가 성행하였고 밀교는 불교교단의 사회적 기제로서 관정이나 도량의 개설이 4부 대중이 참여한 가운데 개설되거나, 개인의 성불을 위한 수행은 현교를 통해 계율·구사·반야·중관·인명의 5학을 공부하고, 밀교를 통해 3신을 구족한 수행을 하였다. 「84성취자전」에서 승속이나 신분, 성별을 초월하여 모든 계층이 평등하게 밀교를 수행하고 성취자들은 존중받았다. 

붓다시대 인도의 엄격한 신분제를 극복하고 생명의 평등과 본성의 탐구가 천이백여 년 넘게 변함없이 계승된 승가의 면모는 인류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불교교단을 지탱하는 계율과 율학을 한사코 보존했던 인도 조사들의 노력과 희생에 따른 것이지만 오늘날 내놓으란 석학들도 밀교를 오해의 눈으로 보는데 예외가 아니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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