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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자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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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1-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하현주 박사의 마음 밭 가꾸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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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하현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박사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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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1-12 15:27 조회 1,9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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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자비정원(慈悲正願) (⑦회)

새해맞이 자비서원

필자는 지난여름 온라인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던 8주간의 하트스마일 명상에서 낯선 외국인 친구들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남편이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미국인 여성과 대화하는 순간, 잠시나마 진심으로 그 부부가 고통으로부터 회복되어 평화를 되찾길 바라는 진심을 전했고, 그녀의 얼굴이 잔잔한 미소로 차오르는 것을 보며 나도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아주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 연결감을 더 강하게 해주기도 했다.

팬데믹이 가져다준 이 연결의 역설 속에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어왔던 물질적 실체들에 대해서도 회의하게 된다. 학교라는 공간이, 회사라는 공간이, 나아가 법당이나 예배당이라는 장소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을까? 꼭 만나고 살을 맞대야만 진정한 만남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 

없어서 아쉽지만,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우리는 무엇이 더 본질이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팬데믹 위기 속에서, 온라인 그물망(network) 위에는 더 큰 본질만이 남고, 부수적이었던 자잘한 것들은 체에 걸러져 내려간다. 공간이라는 관념도, 가까운 관계라는 허상도 체에 걸러진 후 남는 것은 진정한 배움에 대한 열망과 스스로 체득한 깨달음,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관계들일 것이다.

이처럼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게 되는 것은 팬데믹이라는 진통을 겪고 난 이후 얻게 될 소중한 결실이다. 공간이라는 제약이 사라지면 배움의 기회가 만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질 수도 있고, 무엇을 입고 타고, 어디에 사느냐가 더이상 본질 이상으로 평가되지 않는 때가 올 것이다. 물리적으로 좁은 관문 안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했던 시험, 평가, 줄 세우기, 서열 매기기도, 보여주기에 급급했던 과도한 형식들도 사실상 그 필요를 덜 하게 될지 모른다. 

그보다는 함께 하는 사람들과 내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팬데믹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는 점점 더 전염에 대한 민감성과 자각이 높아지고 있다. 질병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정서도 전염되고 자동적으로 공유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수록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그 사람이 가진 간판이나 타이틀보다는 그가 어떤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떤 감정을 나에게 전해주는지가 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개개인의 고유함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한 채, 성적이나 능력, 출신만으로 가치를 매기던 때는 무한한 연결의 가능성 속에서 종식되고 있다. 이전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소수의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였다면, 이제는 BTS처럼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가 올바른 과정과 행위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는 사람인지 아닌지로 평가받는 때가 오고 있다. 

기존의 상투적인 가치들이 검증되고, 전복될 코로나 이후의 변화된 새해를 맞이할 우리에게는 새로운 서원이 필요하다. 변화된 세상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더욱 귀해지는 사회, 소수의 엘리트만이 대우받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모순 속에서 소외당하던 이들이 그 힘을 돌려받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서원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어떤 기능을 하는 사람인가보다는 그가 어떤 삶의 향기를 가진 사람인지를 더 음미하게 될 것이다. 몇 안 되는 잣대로 섣불리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누구나 그 존재만으로도 귀하게 존중받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서원이 모아질 때, 변화는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팬데믹을 통해 우리를 더 연결해주는 결실을 맺기 위해, 새해에는 다음과 같은 자비의 서원을 마음에 새겨보면 어떨까?

나부터 먼저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를, 나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그 마음을 남에게도 조금씩 확장해가기를. 고통받는 이를 만나면 동정이 아닌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의 평온을 염원하기를. 행복한 이를 만나면 시기하지 않고 내 일처럼 함께 기뻐하기를. 우리 모두가 상호의존적인 연결 속에서 매 순간을 함께 하고 있기에 나와 남이 다르지 않게 귀하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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