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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정사 연명의료 | 죽음이란 무엇인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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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08-01 14:21 조회87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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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역사의 새벽, 인류는 생각의 첫머리에서 이 문제와 맞닥뜨렸을 것이다. 종교와 철학 그리고 모든 문명의 시발점에 이 문제는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이 극대화되고 분초를 다투어 정보가 쏟아지는 오늘날에 와서도 이 문제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결말을 짓지 못하고 있다.

대개의 학자는 죽음이란 한 생명체의 모든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원형대로 회복될 수 없는 상태라는 데에 동의하지만, 단서를 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확실하게 규명하지 않고는 죽음에 대한 완전한 해답은 있을 수 없다고도 하고, “죽음의 세계란 인간의 경험 영역, 지각 영역을 넘어서는 차원의 문제에 속하기 때문에 그 본체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고도 한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해석에 특히 자기 식의 독단을 많이 개입시킨다. 각자 자신의 안경을 통해 죽음을 보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통일된 답변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그만큼 인생에서 중대 문제이고,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며, 또 그것으로 모든 것이 종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자들은 삶과 죽음의 구분에 고심한다. 생물계에는 단세포 생물도 있고 다세포 생물도 있어서, 생사를 가늠하는 기준을 일정하게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고등 동물인 인간의 죽음을 판정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일반적으로 심장 고동과 호흡 운동의 정지를 표준으로 삼지만 가사상태(假死狀態)인 경우도 있고, 한 때 멈추었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의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천수를 누리고 기력이 쇠진하여 저절로 여러 기능이 멈추는 자연사가 있는가 하면, 아직 창창한 나이에 뜻하지 않은 원인이 생겨 죽음을 맞는 우연사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예로부터 오래 사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삼았고,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考終命)’을 오복의 하나로 꼽았다. 인간을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라 규정한 철학자도 있고, ‘산다는 것은 무덤을 향하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말한 소설가도 있다.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을 돌려라. 그리고 미구에 죽을 것이라 생각하라.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가를 그대가 아무리 번민할 때라도 밤이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번민은 곧 해결될 것이다. 그리하여 의무란 무엇인가, 인간의 소원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가 곧 명백해질 것이다. 아아, 명성을 떨쳤던 사람도 죽고 나면 이렇게 빨리 잊혀지는 것일까!” 그리스의 비극 시인인 소포클레스의 말이다. 이를 받듯이 몽테뉴(Montaigne, M.)는 그의 수상록(隨想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어디에서 죽음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곳곳에서 기다리지 않겠는가! 죽음을 예측하는 것은 자유를 예측하는 일이다. 죽음을 배운 자는 굴종을 잊고, 죽음의 깨달음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우리들을 해방시킨다.” 어쨌든 사람은 죽지 않으면 안 되고 단 한 번 혼자서 죽는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끝막음이다. 어느 누구도 피하지 못하고 거부하지 못하며 전신으로 맞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의문은 다시 되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