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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정사가 전하는 밀교연재 |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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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1-03 11:10 조회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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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중생의 마음을 짐승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심(狸心), 구심(狗心), 가루라심(迦樓羅心), 서심(鼠心), 사자심(獅子心), 휴유심(鵂鶹心), 오심(烏心) 등이 그러한 예다. 지난 호의 이심(狸心)과 구심(狗心)에 이어서 이번 호에서는 가루라심(迦樓羅心)과 서심(鼠心)과 사자심(師子心)에 대해 알아본다.

 

가루라심(迦樓羅心)

가루라심(迦樓羅心)은 독수리와 같이 사납게 생긴 상상의 동물 가루라에 비유한 마음인데, 언제나 큰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는 것처럼 혼자서는 해내지 못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맹수의 새인 가루라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루라(迦樓羅)는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맹조(猛鳥)로서 독수리와 같이 사납게 생긴 새를 말한다. 생김새는 조두인신(鳥頭人身)이라 하여 머리는 새, 몸은 사람의 모습으로 큰 날개와 날카로운 발톱을 지니고 있다. 가루라는 불교에 유입되어 천아수라 등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서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호법중(護法衆)으로 변용되었다. 이 가루라는 밀교에서 태장계만다라의 외금강부의 남방에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의미와는 달리 가루라심은 좋은 마음이 아니다. 지나치게 의지하려는 마음을 나타낸다.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대일경소>에서 가루라심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가루라는 언제나 양 날개가 그 몸에 붙어 있는 것을 믿고서 뜻하는 대로 날아가며, 이로써 큰 힘을 이룬다. 그러나 한쪽 날개가 작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마음도 역시 그러하다. 언제나 많은 친구들과 서로 도와 이루고 보탬이 됨으로써 사업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행위로 인하여 나중에 마음을 낼 뿐, 홀로 나아가지 못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을 보면, 문득 저 사람이 행하는 데 내가 어찌하여 할 수 없는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도무지 일을 해나갈 수 없는 허약하고 유순한 마음이다. 수행자에게 독립심과 용맹심,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대일경소>에서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용건한 보리심은 사자왕과 같아서 도움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여야 하며, 이렇게 해서 그 마음을 다스린다.’

가루라와 같은 마음을 불퇴전의 용맹정진으로 없앨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용맹정진인가. 생각과 답이 개인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지금 여기에서 이심, 구심, 가루라심을 단박에 버리는 것이 최선의 용맹정진이다. 용맹전진은 지속적인 진언염송과 밝은 지혜, 넓은 자비로써 가능하다.

 

서심(鼠心)

서심(鼠心)은 쥐의 마음이다. 모든 얽매임을 끊으려고 하는 마음인데, 언뜻 보면 좋은 의미로 쓰여진 것 같지만 실상은 나쁜 뜻으로 쓰였다. 이치에 어긋나는 마음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위하는 마음까지 가미되어 있다. <대일경소>에 서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쥐의 마음이라 하는가? 모든 얽매임을 끊으려고 하는 마음이다. 쥐는 다른 상자나 밧줄 등을 보고 이빨로 끊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좋아하는 것이 이치에 어긋나며 손상시키고 부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빨로 좋은 것을 오히려 끊어내려는 마음이다. 이를테면 보리심을 길러내야 하는데, 그 마음을 오히려 버리는 것이오. 자비심을 내어야 하는데 자비의 종자를 끊어버리고 살생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마음이다. 보시 보다는 인색함을, 화합 보다 이간양설을 저지르는 마음이다. 선심(善心)을 끊어버리고 악심(惡心)을 일으키는 마음이다. 악심(惡心)을 끊어야지 선심(善心)을 종자를 끊어버리고 있다. 중생의 악심을 쥐의 마음에 비유하고 있다.

 

사자심(獅子心)

사자심(獅子心)은 자기가 우월하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사자의 마음이라 하는가? 모든 두려움이 없고 악함이 없는 법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두려움이 없고 악함이 없는 법을 닦는 것은 선법(善法)으로 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불선한 법으로 비유하고 있다. 왜냐하면 깨달으신 부처님은 사자(師子)에 비유하지만 중생의 마음은 남보다 우월하다거나 잘났다고 우쭐대는 마음을 빗대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자심은 남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마음이다. 부처로서의 사자와 중생으로서의 사자가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사자가 모든 짐승 가운데 이르는 곳마다 모두 이겨서 겁약하지 않은 것처럼 이 마음도 역시 그러하다. 모든 일 가운데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승리하고 마음이 겁약하지 않고자 바라며, 자기 마음에 어려운 일이 없고, 나와 그 우열을 다툴 자가 없다고 여긴다.’ 아상과 아만으로 가득 찬 마음이다. 이를 다스리는 법은 <>에서 이르기를, ‘석가 사자의 마음을 내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우열이 없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평등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이를 밀교에서는 삼매야(三昧耶)라고 한다. 밀교의 교설이나 삼밀수행, 계율, 의궤 등은 궁극적으로 삼매야를 이루고자 하는 데 본 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