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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와 문학 |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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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1-03 11:20 조회46회

본문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미당은 굴곡진 삶의 행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시들은 모국어로 쓰여진 가장 뛰어난 작품들의 반열에 올라가 있다. 시를 쓰는 후배인 나 역시 그의 얼룩진 삶에 고통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까지 고통스럽지는 않다.

연꽃을 만나러 가는 바람과 연꽃을 만나고 오는 바람은 어떻게 다를까? 그것은 섭섭하게 아조 섭섭지는 말라는 다음 구절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연꽃 만나러 간 일이 다 잘 된 게 아닌 것이다. 여기서 연꽃은 연인일 수도 있고 진리일 수도 있다. 이리 저리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 그것이 시이다.

그러므로 이별도 영이별이란 없고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는 이별이다. 전생과 내생을 말하는 것은 부처의 어법이다.

무언가를 콕 찍어 좋다 나쁘다를 말하기 전에 바람처럼 그저 슬쩍 지나치면서 서운한 듯 그렇지 않은 듯 옅은 웃음을 보이는 것, 그게 가장 지극한 사랑의 경지임을 아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지.

나도 당신에게 그런 바람이고 싶다. 그대가 어떤 답을 내리던 상관없이 담담하고 가볍게 받아들이고 이생에서 안 되면 다음 생에서 만나기를 바라고 싶다.

그러고 보니 우리 말에서 바람은 무언가를 바란다는 바람과 같은 말이다. 바라는 일이 있다면 바람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선조들의 훈수가 아닐까?

친일과 독재 미화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사창가에서 평생을 허비한 보들레르도 무솔리니를 위해 미군에게 항복 방송을 한 에즈라 파운드도 시는 남았다.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