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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한담 | 부처님 자비와 착한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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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10-04 16:14 조회2,3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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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자비와 착한 사마리아인

 

-다른 존재 덕분에 내가 성립, 타자 존재 자체 윤리로 주장

-현대인에게 자아 중심이 아닌 타자 중심으로 보는 시선 강조

 

부상당하거나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생면부지임에도 도움을 주는 의인의 활약상은 보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다. 우리 사회에는 얼굴 없는 천사가 여전히 많다. 정작 많은 의인들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 공공기관, 기업, 시민사회단체(NGO)까지 의인상을 만들고 있다. 희생의 숭고함을 기리는 동시에 착한 유전자(DNA)가 사회 곳곳에 전파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특히 경찰, 해양경찰, 군인, 소방관 등부터 일반인까지 그 대상을 최대한으로 넓힌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LG그룹이다. LG2015년부터 꾸준히 ‘LG의인상을 준다. 20153, 201625, 201730, 올해 들어 현재 19명까지 총 77명이 LG의인으로 선정됐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도덕적 위기에 대한 개탄의 소리는 귀에 면역이 될 정도로 요란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도덕성 회복의 목청을 돋우웠으나 찢어진 거미줄을 손가락으로 수리하려는 짓이 아닌가 하는 절망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긴 가뭄에 소나기처럼 이 절망감을 녹여 주는 아름다운 의인(義人)들의 이야기, ‘착한 사마리아인의 얘기는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촉촉히 적신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기독교 복음서에서 유래됐다. 강도를 만난 한 유대인이 부상 당한 채 길 위에 쓰러져 있지만, 유대교 제사장 등은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이때 유대인이 천시하는 한 사마리아인이 그를 구해줬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의인,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큰 관심은 우리 사회의 비도덕성에 대한 아픔서 나온 것 같다. 2년전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화재 참사 당시, 부상자 4명을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긴 동해 묵호고 A교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느 대기업 계열 공익재단이 그를 의인상수상자로 선정했지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수상과 상금 5천만원을 한사코 거절했다. 가슴 뭉클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A교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해 큰 화두와 울림을 던져 준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바르고 행복한 사회이다. 이같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초가 바로 윤리 도덕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수레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한다.

첫째는 개인의 도덕성에 기초한 개인 윤리적 차원이고, 둘째는 사회 구조와 제도에 관심을 두는 사회 윤리적 차원이다. 근래 의인에 대한 처우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대한 논의들은 바로 사회 그런 차원의 논의들이다. 이러한 접근은 현대사회가 지닌 구조와 기능의 복잡성으로 인해 사회의 도덕성을 개인의 도덕성에만 의지할 수 없다는 데서 나온다.

의인에 대한 처우 문제와 함께 착한 사마리안 법에 논쟁도 일고 있다. 이 법은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을 구조할 때 자기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조해 주지 않은 사람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법이다. 60대 운전사가 운전 중 심장마비로 졸도했는데 승객은 신고도 안 해주고 공항으로 떠나 결국 그 운전사가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물론 착한 사마리아인 법과 유사한 내용의 조항을 가진 법은 형법을 비롯해 산재해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독립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도덕적 의무와 행위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개인의 인권을 훼손하고 남용될 가능성은 없는가 하는 비판도 높다. 의인과 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당위적이고 규범적인 틀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되며,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착한 존재이고, 착하면서 이기적인 매우 복합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의인과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불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붓다의 연기론과 자비 정신을 윤리이론으로 정립한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Emmauel Levinas)타자 윤리가 생각난다. 그는 다른 존재 덕분에 라는 존재가 성립한다고 보면서 타자의 존재 자체를 윤리라고 주장한다. 그의 타자 개념은 자기중심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현대인에게 자아 중심이 아닌 타자 중심으로 보는 시선을 강조한다. 연기와 자비의 강물로 이 메마른 땅에 생기가 가득하게 하는 것이 바로 붓다의 길일 것이다.

<김주일 현대불교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