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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준교수의 후기밀교 | 생기차제 대유가와 대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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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01-07 15:23 조회1,7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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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차제 대유가와 대성취

 

 

인도불교의 역사상 <대일경><금강정경>의 출현은 인도불교를 밀교의 역사로 뒤바꾼 대혁명을 가져왔다. 석존의 입멸 후 5백 여의 부파불교시대를 정각과 거리가 먼 난해한 학자들의 유희 정도로 평가한 혹평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부파불교 시대 불전문학에 나타난 보살수행이야말로 훗날 초기대승경전과 진언문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불전문학의 화제는 석존의 전생보살에 가탁한 보살도이며, 석존이야 말로 진언문 수행의 진정한 스승이다. 밀교에서 비로자나여래의 삼매야형은 불탑이다. 불탑은 석가모니붓다의 영골을 모신데서 비롯되었지만 부파의 학장들은 불탑으로부터 보편적 진리와 정각자를 상기하고, 비로자나여래를 상상해내었다.

우연히 보게 된 어떤 기고는 양부 만다라의 모양을 두고 태장계만다라를 여성성, 금강계만다라를 남성성에 배대하고 양부 만다라에 성력적인 요소가 잠재해있다고 주장하였다. 양부만다라는 성적 소재와 관련지을 그 어떤 역사적 연원을 발견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오해는 일부 일본 학자의 주장을 맹신한 과거 연구자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다. 진언문에서 성적 소재가 실천원리에 본격적으로 개입된 것은 후기밀교시대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양 만다라가 처음부터 이지불이(理智不二)의 일관된 설계에 의해 성립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양만다라에 대해 여성성과 남성성을 유추할 이유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석존은 수식관(數息觀)을 통해 정신과 호흡, 육체를 지속하는 생명의 관계를 깊이 탐구했다. 신수심법(身受心法)을 구성하는 육체, 감수, 마음,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연기의 무아성(無我性)을 실현하는 것이 수식관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붓다는 육체로 인해 야기된 번뇌만을 지도했으며, 외경과 육체, 감각의 수용에 대해 유루(有漏)무루(無漏) 여부만을 문제 삼았다.

석존을 정각으로 이끈 12지연기의 관찰은 무명으로부터 생노사에 이르는 12단계의 연역적 과정이다. 지금도 실제 테라와다 수행에 있어서도 연기의 무아성에 순연(順緣)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 후기밀교의 수행에서도 이러한 원칙은 동일하다. 관상의 과정에 나타난 성의 소재는 감각의 영역을 확장한 것일 뿐이다.

밀교를 포함해 불교수행에 있어 성 자체가 진리의 깨달음에 기여하는 것은 없다. 전세계 종교 가운데 오로지 힌두교의 샤끄띠즘 만이 성에 담긴 생명력에 브라흐만이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후기밀교는 반야지에 의한 성의 관조를 강조한다. 수식관과 동일하게 연기성과 무아성을 망각한 유무, 무루의 망분별(妄分別)만을 문제 삼는다. 생기차제 관상(觀想)의 과정에서 무아의 진리에 수순(隨順)하는 도량의 의궤와 관정이 생기차제에 존재할 뿐이다.

생기차제의 대유가는 신어심의 범주에 한정된 관상이다. 대성취야에서 비로소 감각을 성의 영역까지 확장된 관상을 시도한다. 상세한 관상법은 성취법마다 다르다. 본질적으로 인도 후기밀교수행에서 육체와 감각을 확장시킨 성을 수행의 소재로 다룰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은 무수한 수행자들이 꿈속이나 아뢰야식의 저변에 존재하는 인아(人我)의 종자, 성으로 부터 야기된 미혹함이 존재해왔다. 나란다대학의 학장들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실제수행을 의궤화 하여 후손에게 그 지혜를 전했다.

밀교를 공부할수록 석존시대와 부파불교시대를 비롯한 역사의 이해가 필요함을 느낀다. 불교사를 외면하면 불교와 외도를 구분할 능력을 잃어버린다. 불교대학의 과목소개들을 살펴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힌두교의 명상과 불교의 선정, 유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교수나 학자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밀교수업을 밀교명상으로 바꾸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출판사 사장들은 서책 제목에 밀교라는 말을 넣는 대신에 의례나 의궤, 도량이라는 말을 넣기를 종용한다. 이유인즉슨 밀교라는 서제에 대해 독자들이 난해함을 느끼고 책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 자세한 다른 배경은 나랏돈을 얻을 수 있는 확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말법시대일 수록 진리를 정면으로 탐구하고 그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시아본사(是我本師) 석존의 가르침과 이를 계승한 나란다대학 아사리들의 지혜를 이해하는 분들은 외롭지만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