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부처님 오신날 특집_부처님 탄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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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5-08 09:55 조회7,9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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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가 다 고통 가운데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


이번 달은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하는 달입니다. 음력 4월 초파일이 부처님 오신날이며 우리 나라에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연도와 정확한 날짜는 대승불교권과 상좌부불교권의 견해가 약간씩 다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음력 4월 초파일을 부처님 오신날로 기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불기로 2558년이 되는데 이것은 부처님이 2558년 전에 탄생하신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해를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즉 돌아가신 첫해가 불기 1년이 되는 셈이지요. 부처님께서는 80세에 돌아가셨으니까 태어나신 해는 여기에 80을 더하면 2638년이나 되었다는 말이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엄청 오래전에 이 세상에 계셨던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처님의 말씀이 이천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의 과학시대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훌륭한 말씀이니 진리의 말씀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의 어떤 말들이 지금에 와서는 터무니 없는 미신처럼 들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래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rtha)였습니다. 후에 출가하여 깨달음을 열고 ‘붓다’로 일컬어졌고 ‘석가족의 성자’라는 의미에서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일컬어졌던 것입니다. 인도말로는 ‘샤카무니(??kyamuni)’라고 하는데 석가는 석가족을 가리키는 샤카의 음사이고 모니는 성자를 의미하는 무니의 음사입니다. 따라서 샤카무니는 샤카족 출신의 위대한 성인이라는 뜻이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석존(釋尊)’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석가족의 성인으로서 세상에 으뜸가는 분이라는 뜻의 석가모니 세존을 줄인 말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원래의 성인 ‘고타마’는 ‘가장 훌륭한 소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소를 신성시하던 당시의 일반적인 이름으로서 석가족의 별칭으로 추측됩니다. 경전에 보면 ‘구담(瞿曇)이시여’ 하는 호칭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은 고타마를 한자로 음사한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모든 것을 성취한 사람’, 혹은 ‘일체의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부친은 석가(釋迦;??kya)족 출신으로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라고 하는 작은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부친의 이름은 슛도다나[?uddhodana;정반왕(淨飯王)]라고 했으며, 모친은 이웃 코리족 출신의 마야(摩耶;M?y?)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삼촌이 백반왕(白飯王)이니 감로반왕(甘露飯王)이니 하고 불렸던 것을 보면 석가족은 유목민 계통이 아니라 쌀농사를 짓던 농경민족이 틀림없었다고 생각됩니다. 불전에 의하면 정반왕은 오래도록 아이가 없다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6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해서 태안에 드는 꿈을 꾸고서 임신했다고 합니다.


마야부인은 출산을 위해 친정에 가던 중 룸비니(Lumbin?) 동산에서 부처님을 출산했다고 경전에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는 현재의 네팔 카투만두 서쪽 200㎞ 지점에 있는 카필라바스투 근교에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를 정확하게 몰랐는데, 1896년 아쇼카(A?oka)왕의 석주(石柱)와 연못 등이 발굴되면서 비로소 석존의 탄생지로서 확인되었습니다. 그 석주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신들에게 사랑받고, 자비로우신 아쇼카왕은 즉위 관정 후 20년이 지나 스스로 여기에 와서 공양했다. 여기에 불타 석가모니가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담을 쌓아올리고, 석주를 건립했다. 룸비니 마을은 토지세를 면제받고 수확의 8분의 1을 납부한다.


아쇼카왕의 석주에는 이렇게 룸비니가 부처님의 탄생지이고 그 마을에 혜택을 준다는 사실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룸비니라는 이름은 마야부인의 친정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동산을 만들어 주고 부인의 이름을 따서 룸비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저도 룸비니 동산에 직접 가 본적이 있는데 아쇼카왕의 석주라든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낳은 마야부인이 목욕했다고 하는 연못이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고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모신 작은 사당도 하나 있었는데 정비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출산을 위해서 친정으로 가던 마야부인이 갑자기 산기를 느껴서 이 룸비니 동산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곳은 동산이라기 보다 꽃이 만발한 화원에 가까웠는데 그곳에 있는 무우수(無憂樹)라는 나무에는 꽃이 가득피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아래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하던 마야부인이 아름답게 핀 무우수 나무에 오른손을 뻗는 순간 태자가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하셨다고 합니다. 무우수는 아쇼카나무라고도 하는데 흰 색깔의 꽃이 핀다고 합니다. 아마 이런 이름들은 뒷날에 붙여진 이름인 것 같습니다.


태자가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했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 당시에도 제왕절개수술이 있었다느니, 석가모니 부처님은 제왕절개수술에 의해 태어나신 게 틀림없다느니 하는데, 이런 논의들은 부처님의 전기를 쓴 사람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부처님이 사성계급 중에서 왕족에 속하는 크샤트리아 계급이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 신화에 의하면 바라문은 만유의 근원인 브라만(brahman)을 신격화 한 바라문교의 최고의 신인 범천(梵天)의 머리에서 태어나고, 크샤트리아는 겨드랑이나 옆구리에서 태어나며, 평민은 무릎에서, 하층민인 수드라는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옆구리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부처님이 왕족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한 손으로는 하늘을,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그 유명한 탄생게(誕生偈)인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외쳤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천상 세계나 인간 세계를 통 털어 내가 가장 존귀하다는 뜻인데,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이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그러나 이 대목도 다분히 상징적인 서술이라고 봐야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어 이러한 말을 외쳤다는 것은 물론 비현실적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대한 불타의 탄생을 묘사하는데 불전의 작가들이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또 상징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육도 윤회, 즉, 여섯 종류의 윤회의 세계를 초월하리란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일곱 발자국이라는 것은 해탈의 세계,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의 뒤에는 사실 ‘삼계개고 오당안지(三界皆苦, 吾當安之)’라는 문구가 짝을 이루어 붙어 있습니다. 이 말은 ‘삼계가 다 고통 가운데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오당안지’가 제대로 된 문장인데, 사람들은 앞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아독존’이라고 하니까 뒤의 중생을 건진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하고 부처님이 너무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유아독존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부처님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 인간이 모두 그렇게 존귀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은 위대한 인간 선언이고 생명 선언이다 하면서 확대해석을 하는데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장면은 그저 진리를 깨쳐서 윤회의 속박을 해탈하고 무명에 가려져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을 불타인 내가 구제할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부처님께서 태어나시자마자 이 말씀을 하셨다고 해서 이것을 ‘탄생게’라고 합니다. 일곱 걸음을 걸으신 후에 이 탄생게를 읊으셨다고 하는 것은 진리를 깨치신 부처님만이 고통에 빠진 모든 세상을 구하실 수 있다는 부처님에 대한 찬탄을 이런 식으로 묘사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탄생에 대한 이러한 여러 가지 신화적인 묘사는 후대에 이루어진 부처님의 전기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전기에 따라서는 태어나시자마자 이 세상에서 나고 죽는 괴로움을 멈추고 해탈에 들 것이란 의미의 말씀도 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전기마다 그 서술 방식이 다 약간씩 차이가 나고 부처님의 탄생 장면을 뭔가 좀 더 극적으로 그려야겠다고 하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부처님 오신날’ 행사시에 보면, 관불의식(灌佛儀式)이라고 하여 오른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는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탄생게를 외치는 장면이라고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붙는 말인 삼계의 고통에 빠진 모든 중생을 편안하게 해 주시겠다는 부처님 말씀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만 가지고는 자칫 그릇된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시지만 거기에 맞추어 우리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늘에서 비는 차별없이 내리지만 그릇에 따라 담기는 물의 양이 다르듯이 부처님의 자비는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만 자기의 복그릇에 따라 복의 양은 달라집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잘 새겨듣고 실천할 때에 거기에 맞게 자기의 복그릇이 만들어집니다.


부처님 오신날을 계기로 우리도 우리의 복그릇을 크게 만들어 봅시다.


-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