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과 불교 미학의 만남”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5-14 14:58 조회7,259회

본문

아래글은 제174호 총지종보에 실렸던 글입니다.

많은 분들께 유익하리라 판단되어 이 곳에 한번 더 실어봅니다

-----------------------------------------------------------------------------------------


제3회 학술 발표회 지상 중계
“우리 그림과 불교 미학의 만남”


동방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연구소는 4월 23일 “우리 그림과 불교 미학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제3회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이번 발표회는 한국의 회화 속에서 녹아있는 불교적 사상의 저변을 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도상학에 치우친 미술사가(美術史家)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부처님 경전을 중심으로 한 회화 작품의 해석을 시도하는 학술 발표가 있었다.

기조강연으로 동방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홍윤식 박사가 “한국불교미술의 특징과 그 미의식”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발제로는 한국종합예술학교 강사 지미령 박사가 “고려 수월 관음도에 나타난 불교적 미학의 세계”를 발표하고 전 대전 시립 미술관장 김영재 박사가 논평을 하였다. 미술평론가 조정육 선생은 “단원 김홍도 화폭에 나타난 불교적 미학의 세계”를 발표하고, 이화여대 유옥경 박사가 논평을 했다. 동방대학원대학교 백원기 교수가 “추사의 ‘세한도’에 나타난 불교적 미학의 세계”를 발표하고 같은 대학 이영철 박사가 논평했다. 마지막으로 동국대 강의교수 진문철 박사가 “장욱진의 화폭에 나타난 불교적 미학의 세계”를 발표하고 원광대학교 선조형예술학과 윤양호 교수가 논평하였다. 이번호에는 홍윤식 박사의 ““한국불교미술의 특징과 그 미의식”를 요약하여 소개한다.




“한국불교미술의 특징과 그 미의식”

홍윤식(문학박사. 동방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1. 불교예술의 근원은 장엄으로부터 시작

필자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불교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절에서 거행하는 장엄한 의식이 필자 마음을 움직였다.사원을 장식하는 단청이나 벽화, 근엄한 불상과 불화 그리고 의식을 행할 때 들리는 종소리, 염불소리는 아름답고 경이로운 마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제요소를 장엄(莊嚴)이라 한다. 현대적인 용어로 불교예술, 불교미술, 불교음악 등으로 표현하지만 불교경전에는 이러한 용어는 없다. 오로지 극락정토는 여러 모습으로 장엄되어있다 라고 종합적으로 표현된다. 불교미술의 미학적 고찰을 전제로 한다면 장엄에 대한 의미를 종합적으로 깊이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엄에 대한 고찰은 오늘날 불교미술 연구의 방법론이 양식주의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그 내용을 모르고 불교 미학적인 토대 없이 새로운 창조적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2. 불교를 구성하는 요소불교를 접하는 많은 연구자들은 불교가 학문적이고 지적이며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그것은 원시불교로부터 시작된 지적인 경향 덕분이다. 후세에 발달한 대승불교는 지적인 동시에 정적경향(情的傾向) 도 많이 나타난다.

우리는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원시불교나 대승불교가 다 같이 수행방법으로 삼는 계(戒), 정(定), 혜(慧) 3학을 수행 덕목으로 하는 것은 불교가 지적 종교만이 아니라 정적인 요소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도 불교를 미학적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요소다.

한편 불교의 사회적 현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원과 신도의 조직 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불교가 하나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표현하는 현상이다. 오늘날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연등회’등도 불교의 사회적 활동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정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어 관심을 끈다.

또한 불교는 신비적 경험이란 것을 잊을 수 없다. 불교는 의식적, 지적, 사회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불교가 종교적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어렵다. 신비적 감정이 없이는 종교적 기능을 충분히 다 할 수 없다. 즉 불교의 신비적 분자가 내포되어 있음에 의하여 살아있는 종교로서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신비라는 경험 속에는 여러 가지 감정적 분자가 내포되어 있다. 예컨대 경이로움, 공포, 신뢰, 희망의 감정 등 이 신비적 감정 속에 배태된다.

일반적으로 불교는 지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철학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외에도 위에서 살핀바와 같이 여러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를 감정적 요소라 해도 무방하다. 불교는 안심입명(安心立命) 또는 전미개오(轉迷開悟) 라는 말을 잘 쓴다. 그러나 이들 속에 내포된 감정분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는 희망, 신임, 경이 그리고 자비라는 것이 없으면 안 된다. 그 뿐 아니라 환희의 마음 법열(法悅) 이란 것이 없으면 안 된다. 이러한 감정은 입으로 말 하기는 어려우나 종교의 진리를 조립하고 있는 정적요소(情的要素) 인 것이다.


3. 불교적 의식의 표현이 불교 예술이다.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불교미술은 불교의식의 소산이라한데 기인하여 불교의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불교의식이란 불교적 감정의 외적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즉안에서 밖으로의 표현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표현이라 한것이 다시 밖에서 안으로 마음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불교의식이란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없어서도 괜찮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마음이 통하면 외부는 어떤 것이라도 무관하다고 생각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이라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이 있으면 그것에 상응하는 표현형식이 없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 마음의 움직임이 없다고 할 정도로 표현이라는 것과 경험과의 관계가 밀접한 것이다.

표현이란 것을 빠트리면 안 된다. 무엇인가 그 마음속에 움직임이 있으면 그것이 반드시 밖으로 나타나게 된다. 밖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마음속에 있는 것이 완전히 느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감정, 의식 등의 마음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그 상응의 표현이란 것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표현이 있고서 비로소 그 마음이 완전하게 움직인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적인 측면에 있어서나 문장을 쓸 때 그 표현이 잘 되지않는다면 혹은 음악을 하더라도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 그 사람의 느낌이 아직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 날 한국 불교는 외부적 표현으로서 불교의식이나 문화행사에 관심을 집중하고 그를 발전시키려 하고 있음은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를 있게 한 정신적 내용까지 이해하려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불교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참된 마음을 지니고 모든 것을 수용하고 이를 의식화된 표현을 통해 오늘날의 살아있는 불교와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따라서 한편 생각하면 단순한 하나의 형식을 따르는 폐해를 생각 할 수 있다.

즉 내용보다는 표현 이라는데 너무 무게를 두고 그 표현 의식이라는 것이 형식에 치우쳐 아무런 의미를 찾아 볼 수 없게되리라 생각한다. 이는 전통이라는 것에 수반되는 폐해인 것이다.

여기서 전통이 갖는 폐해를 다시 되 돌아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그렇게 되면 전통적인 불교의식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게 된다.

그 새로운 것이 지금까지 경험한 역사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역사에 나타나 살아온 정신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불교의 전통을 지킨다고 하는데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는 신중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요컨대 형식이 형식에 그치고 만다면 큰 결함이 생긴다. 한편 마음의 움직임은 마음속에 그치지 말고 형식으로 표현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참된 마음의 힘이 나오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표현 형식이란 것과 표현의 정신이란 양면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4. 경전을 근거로 한 종합적인 불교 미술의 연구가 필요하다.

불교의식의 소산으로 표현되어진 것을 장엄이라 한다. 이 장엄이란 가치는 미학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미학의 연구는 미진한 상태다. 미술사 연구는 표현의 형식에만 치중되어 표현의 정신에 대한 연구가 부진하다. 그러면 이 장엄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장엄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경전은 ‘무량수경’이다. 경전에는 부처님의 열굴과 신체에 대한 표현과 극락정토의 장엄한 모습은 우리들로 하여금 심미감(審美感)을 불러일으킨다.

요컨대 불교 경전상의 정적인 요소는 장엄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선종은 지적인 종교라 하지만 여기서도 정적 요소가 있어 선적 표현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 불교미술은 정토교적 장엄, 밀교적 장엄, 선종적 장엄등이 기본이 되어 이들이 상호 작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들 장엄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한국 불교미술의 형식과 내용을 동시에 이해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