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공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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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8-12 11:15 조회6,4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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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공의 실천이 곧 중도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허무주의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여 일체가 공이라면 선이 어디 있으며 악이 어디 있는가라고 하면서 막행막식을 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간다면 거리낄게 뭐가 있느냐는 식으로 허무주의에 빠져 계행도 무시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는 것입니다. 즉 공을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인과라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공이 연기에 바탕을 둔 제법(諸法)의 실상을 밝힌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공을 아무 것도 없는 무로 해석하여 도리어 공에 얽매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불교에서 공의 도리를 말하는 것은 모든 집착을 벗어나 마음의 안락을 얻고자 하는 것인데 도리어 공을 잘못 해석하여 스스로의 발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 공의 실천으로서의 중도를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니까 이를 잘못 해석하여 자기의 입장을 애매하게 한다든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양비론(兩非論)적인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도 애매하거나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는 하나의 견해나 태도에 집착하는 그릇된 공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기로서 이루어지는 세계의 본성이 공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늘 변화시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좋은 인연을 만들면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모르고 공이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이해하여 좋은 방향으로의 노력을 하지 않는 다든지 혹은 모든 것을 부정하거나 매사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태도를 취하는 것은 도리어 공에 얽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공집(空執)이라고 합니다. 특히 공을 허무적으로 이해하여 만사를 부정하는 것을 악취공(惡取空)이라고 합니다. 불교 공부의 방향을 잘못 잡아 이런 악취공에 빠진 사람은 구제할 길도 없습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불교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른 말을 해주어도 요지부동입니다. 아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잘 가르쳐줄 수 있지만 불교공부를 어설프게 해서 악취공에 빠진 사람은 아집이 있어서 남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공부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여 혹시나 자신의 배움이나 믿음에 오류는 없는가 끊임없이 살피는 것이 불교 공부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