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삼보귀의는 불자가 되는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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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8-28 10:00 조회7,2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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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목적은 고(苦)로부터의 해탈을 대전제로 하고 있으며, 불교의 모든 교리는 이러한 목표를 향해 조직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공부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고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불행과 좌절, 갈등 등은 물론이고 생로병사라는 누구도 거역하지 못할 현상을 앞에 두고서 희희낙락한다면 그게 바보 아니겠습니까? 인생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울다 웃다 한 세상 보낸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어리석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러한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자기에게 큰 병마가 닥치는 등의 엄청난 불행을 만나야 겨우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하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그러한 불행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고통이 너무 큰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를 공부하게 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그러한 불행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지혜를 통하여 삶의 실상을 파악하고 모든 괴로움을 벗어나 절대 안온의 경지에 머무르는 방법을 일러 주셨습니다.


그 방법의 첫 번째는 삼보(三寶)에 대한 귀의(歸依)입니다. 삼보는 불교의 세 가지 보배라는 뜻으로서 불(佛)?법(法)?승(僧)의 세 가지를 말합니다.


먼저 불(佛)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불교(佛敎)’는 글자 그대로 ‘불타(佛陀)의 가르침[敎]’, 혹은 ‘불타에 의하여 설해진 종교’를 의미합니다. ‘불타(佛陀)’는 인도의 고어인 산스크리트[범어(梵語)] ‘buddha’에서 나온 한자의 음사입니다. 이것을 줄여서 그냥 ‘불(佛)’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말로는 ‘부처님’이라고 하며, 요즘은 원래의 발음 그대로 ‘붓다’라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붓다’의 원래의 의미는 ‘진리에 눈을 뜬 사람’입니다. 이러한 의미가 확대되어 ‘완전한 인격자’, 혹은, ‘절대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 등으로도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한 마디로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한문으로는 ‘각자(覺者)’라고 의역했습니다.


붓다라는 말은 불교에서만 사용된 말은 아닙니다. 인도에서는 예로부터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붓다라는 호칭을 붙였습니다. 예를 들면, 옷을 벗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인도의 자이나교 같은 데서도 자기들의 교조에 대하여 붓다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신 불교의 석가모니부처님이 나오시고부터 붓다라는 말은 이 분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처님이라고 하면 주로 석가모니부처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일반사람들도 인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붓다를 ‘스스로 깨달음을 완성하고 다른 사람도 깨달음에 이르게 하려는 자각각타(自覺覺他)의 원을 지니고그것을 완성한 분’이라고 정의합니다.


불교는 인도 땅에서 한 인간으로 태어났던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분이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어 석가모니 부처님이 된 후 그 깨달은 내용을 제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우리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따라서 불교는 한마디로 ‘석가모니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내용은 누구나 진리에 눈을 떠 붓다가 됨으로써 윤회(輪廻)의 고통을 벗어나 열반(涅槃)의 안온한 경지에 이르는 길을 밝힌 것이므로, ‘성불(成佛)을 설한 가르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부처가 되기 위한 가르침을 설한 것’이 불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자 부처가 되기 위한 가르침이 담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불교를 ‘삼보귀의(三寶歸依)의 종교’라고 하는데, 이것은 부처님과 부처님이 설하신 진리, 그리고 부처님이 설하신 진리를 전하는 승단(僧團)의 세 가지를 가장 소중한 보배로 여겨 여기에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불(佛)?법(法)?승(僧)의 삼보라고 하며 귀의란 여기에 목숨을 바쳐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즉, 불(佛;buddha)이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석가모니부처님을 지칭합니다. 그러나 불교에는 석가모니 부처님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대승불교의 발달과 함께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하여 많은 부처님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먼 과거에도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이 계셨을 것이고 미래에도 깨달은 분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이른바 삼세의 부처님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 더 나아가서 공간적으로도 많은 부처님을 생각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는 보편적인 것이므로 우주 공간의 어느 곳에서든지 똑 같은 진리를 설하는 부처님이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시방 세계에 모두 부처님이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이른바 ‘불타관’의 전개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는 대로 달른 책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든 ‘불’이라고 하면 좁은 의미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뜻하며, 넓은 의미에서는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말한다는 것만 우선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법(法;dharma, dhamma)이란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를 말하며, 또한 우리가 어떻게 성불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승(僧)이란 승단(僧團) 혹은 승가(僧伽)라고도 하며 불도를 실천, 수행하는 출가승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 상가에서 온 것인데, 원래의 뜻은 ‘화합의 집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승가를 화합중(和合衆)이라고도 합니다. 스님을 과거에 ‘중’이라고 한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승가라는 말의 원래 의미인 ‘화합된 집단’이 승가라고 볼 때, 다툼을 일삼는 승가는 엄밀히 말해서 승가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승단은 부처님을 대신하여 민중에게 불교의 교리와 실천방법을 설하며 지도하는 출가자들의 집단을 말합니다.


원래 불교도의 단체는 출가수행자와 재가의 신도로 구분합니다. 출가수행자는 세속생활을 완전히 버리고 전문적으로 불도를 닦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님들입니다. 재가신도는 세속 생활을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출가승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출가승에는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사미(沙彌)?사미니(沙彌尼)?정학녀(正學女)의 5가지가 있습니다. 재가신자에는 우바새(優婆塞)?우바이(優婆夷)의 2가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출가와 재가의 단체를 합쳐 7중(衆)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와 우바이만을 가리켜 4중, 혹은 사부대중(四部大衆)이라고 합니다. 승단은 이러한 사부대중에 의하여 유지되고 발전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법?승 삼보는 불교를 성립시키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동시에 이 셋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부처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불교는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계시고 부처님이 설하신 법이 있더라도 이 법을 대중들에게 전하고 실천할 승단이 없으면 불교는 성립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불법을 배우고 따르는 재가신자인 우바새?우바이가 없으면 승단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불교는 성립할 수 없게 됩니다. 즉 승단을 구성하는 사부대중은 불교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불교에서는 불?법?승의 삼보를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기며, 여기에 귀의하여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불교에 처음 입문할 때에 삼귀의계(三歸依戒)를 받게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불교란 이처럼 부처님과 부처님이 설하신 법, 그리고 그 법을 전하고 실천하는 승가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 삼보를 중심으로 성불에 이르는 길을 더듬어 나아가는 것이 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승 삼보에 대한 귀의가 불교 공부의 첫걸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