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무연대자, 동체대비(無緣大慈, 同體大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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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0-20 12:30 조회8,0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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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종교가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게 까지도 자비로운 마음을 지니라고 하는 것은 불교 뿐일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사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서도 이웃 종교를 포용하지 못하고 서로 살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도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지에는 종교 문제로 살육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무엇보다도 자비를 가장 중요한 실천덕목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사실 불교의 자비는 사랑이라는 말로 대체하기에는 너무 뜻이 넓고 깊습니다.


불교에서는 ‘무연대자, 동체대비(無緣大慈, 同體大悲)’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나하고 인연이 없는 중생에게도 무한한 자비를 베풀고 모든 중생을 내 몸 같이 가엾이 여긴다는 뜻입니다. 인연이 없는 중생이라고는 하지만 나와 인연이 없는 중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물까지도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나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동남아의 어느 곳에서는 자연으로 흐르는 하천을 개조하여 늪지대나 개펄을 모두 없애고 시멘트 둑과 아스팔트로 포장을 하였더니 해마다 찾아드는 철새가 쉴 곳을 잃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벌레들이 급속하게 늘어나 농사를 다 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사소한 예이지만 보이지 않는 생물을 해침으로써 우리에게 막대한 피해가 돌아오기도 합니다. ‘무연대자, 동체대비’라는 말은 오늘날과 같이 지구촌이 하나로 묶여진 시대에는 더욱 필요한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사물과 현상은 서로 의지하여 발생하고 또 서로가 연관이 되어 소멸한다는 연기(緣起)의 도리에 바탕을 두고 일체 중생을 나와 한 몸으로 보기 때문에 자비의 실천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무한한 자비를 베푸는 것이 사실은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숫타니파타》 가운데의 <자비경(Metta-sutta)>이라는 경전에 이런 게송이 나옵니다.


선업을 닦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이와 같이 하라

유능하고 정직하고 고결하며 온화하고 점잖으며 겸손해야 한다.
만족할 줄 알며 남들이 편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하고
매인 일이 적으며 간소하게 생활하라.
감각을 제어하고 신중하며 염치가 있어야 하고 탐욕스러워서는 안된다.

또한 지혜 있는 자의 비난을 받을 사소한 잘못도 범해서는 안된다.

모든 중생을 행복하고 평안하게 하라.
약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길거나 억세거나 혹은 중간이나 짧거나 작거나 혹은 크거나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고 하는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빠짐없이 행복하게 하라.

어느 곳에서나 그 누구라도 속이지 말며 멸시하지 말라.
성을 내거나 나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말라.
마치 어머니가 하나 뿐인 아들을
목숨을 다하여 위험에서 지키려는 것처럼
모든 중생에게 끝없는 자비심을 베풀도록 하라.

위든 아래든 걸림 없이 모든 곳을 가로 질러 미움도 버리고 원망도 버리고.
끝없는 자비의 마음을 온 세계에 펼치게 하라.

서거나 걷거나 앉거나 눕거나
깨어 있는 한은 이 마음을 지녀라.
그들이 말하는 거룩한 경지가 바로 이것이니라.
잘못된 견해에 빠지지 않고 고결하며 통찰력을 지닌 자는 감각의 욕망에 집착하지 않는다.
참으로 이러한 사람은 다시는 윤회에 들지 않는다.


부처님 당시의 출가 스님들은 조용한 장소에서 수행할 때 이 게송을 외우면서 자비심을 길렀다고 합니다. 다른 종교의 사랑을 보면 사랑의 대상이 흔히 인간에게 만 국한되거나 아니면 남보다 우월한 내가 나보다 못한 다른 생명에게 사랑을 베풀어준다는 차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게송을 보면 모든 대상에 대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그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행복과 평화와 안락을 바랄 뿐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보호하듯,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게 한없는 자비심만 흐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자비의 정신인 ‘무연대자, 동체대비(無緣大慈, 同體大悲)’인 것입니다.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