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자기의 운명은 자기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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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1-06 16:11 조회6,10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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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운명을 보는 관점에는 크게 나누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창조주나 조물주가 이 세계를 만들었으며 거기에 따라 인간의 운명도 창조주나 조물주의 의도에 의하여 정해진다고 보고 창조주나 조물주를 섬기며 그들의 의도를 헤아려 따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을 찬양하고 신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기꺼이 창조주나 조물주의 종이 되려고 합니다. 불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종교가 이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운명은 단지 우연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에 어떤 노력이나 정성을 기울인다고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철저하게 인과관계를 중시합니다. 나쁜 업을 지으면 나쁜 과보를 받게 되고 좋은 업을 지으면 좋은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이 불교의 한결같은 생각입니다. 지금의 불행을 타개하려면 지금부터라도 거기에서 벗어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불교의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운명관은 비관이나 낙관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가 짓는 것은 자기가 받는다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진리에 입각하여 살아갈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인간에 대해 고정된 생각을 가지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자기 스스로 발전의 가능성을 제한해 놓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나는 이런 데서 태어나서 이런 환경에 있었으니 나의 인생은 이러한 것을 벗어날 수 없다든지, 나 같은 것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식의 자기 비하적인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자주 잊어버리고 삽니다. 업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업력이 되어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 놓습니다. 업이라고 하니까 숙명적인 것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업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업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는 얼마든지 우리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부처님께서 코살라의 파세나디왕에게 이런 설법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이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네 가지는 어두움에서 어두움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밝음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대왕이시여, 어두움에서 어두움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대왕이시여, 여기 한 사람이 있어 비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몸으로 악한 행위를 하고 입으로 악한 말을 하고 마음으로 악한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이 세상에서 악한 업을 계속 지어 죽은 뒤에는 나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두움에서 어두움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대왕이시여,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대왕이시여, 여기 한 사람이 있어 비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몸으로 착한 행위를 하고 입으로 착한 말을 하고 마음으로 착한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이 세상에서 착한 업을 계속 지어 죽은 뒤에는 좋은 곳으로 가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또 대왕이시여,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대왕이시여, 여기 한 사람이 있어 고귀한 가문에서 부유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면서도 신구의의 삼업은 악한 일을 행합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는 악업을 계속 짓고 죽어서는 나쁜 곳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또 대왕이시여, 밝음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어 고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몸으로 착한 행위를 하고 입으로 착한 말을 하고 마음으로 착한 생각을 하면서 이 세상에서 착한 업을 계속 지어 죽은 뒤에는 좋은 곳으로 가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밝음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말씀은 인간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인 말씀입니다. 나쁜 환경에서 태어나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쁜 업을 짓게 되면 여전히 어둠 속을 헤매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나쁜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도 계속해서 선업을 짓는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환히 열립니다. 이것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도 그것을 누리기만 할 뿐 계속해서 선업을 짓지 못하면 나쁜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계속해서 선업을 쌓으면 그 사람은 여전히 좋은 미래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밝음에서 밝음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말씀은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해서 특별한 것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말씀 가운데는 우리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그러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은 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업이라고 하면 무슨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음침한 분위기를 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업이라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그 자체가 업입니다. 비록 과거에 나쁜 업을 지어 나쁜 결과를 받고 있더라도 지금부터 노력하면 자기의 삶은 밝게 열립니다. 또 반대로 과거에는 좋은 업을 지어 좋은 환경에 놓여 있더라도 좋은 업을 계속해서 지으려는 자기의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그 사람의 미래는 어둡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전생이나 내생 까지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을 살펴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자기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모든 것이 바꾸어질 수 있습니다. 설혹 우연 같이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 원인을 잘 살펴보면 전부 자기가 저지른 과보를 지금 받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입문의 첫째 과정은 이러한 인과의 이치를 절대적으로 믿고 거기에 따라 선업을 짓도록 노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이지 전혀 다른 것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운명은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자기의 운명을 주관하거나 우연에 의하여 자기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인과의 법칙 아래 자기의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 나아간다는 것이 불교인의 생활태도입니다.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