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행복의 추구와 종교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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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1-29 09:49 조회5,84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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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된 종교가 오히려 인생을 망친다
참된 종교는 바른 인생관가 삶의 목적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하는 가장 큰 목적은 행복의 추구일 것입니다. 종교를 통해 인생관, 가치관을 확립하자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행복의 추구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종교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이 생에서의 행복을 가장 먼저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죽고 나서도 영원한 삶을 누리면서 영원히 행복해지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불가피한 환경 때문에 이 생에서의 행복의 추구가 어렵다고 느껴지면 이 유한한 인생에 대한 보상심리로서 다른 세계에서의 영생과 행복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지금의 삶이 고달프고 괴로우며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 생각되면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삶을 포기하고 다른 세계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꿈꾸게 된다는 뜻입니다. 종말론이나 말세론, 휴거 등도 아마 이런 생각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생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다른 세계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도록 부추기는 종교는 지금 현재의 삶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고 회피하려는 패배자의 인생관에 적합한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종교는 삶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제시해 주는 종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의 삶도 제대로 이끌지 못하면서 다른 세계에서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설득력을 지니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떤 종교가 바른 인생관, 가치관을 지니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 필요한지 한번 살펴봅시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로 말해서 그 많은 종교가 모두 진리를 말하고 있지도 않으며,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릇된 종교에 빠져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종교의 노예가 되어 하루도 마음 편하게 살아갈 날이 없습니다. 그들은 근거 없는 죄의식에 사로 잡혀 늘 우울해합니다.


또 때로는 종교에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도저히 정상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자신은 종교의 최면에 빠져 그것이 행복한 삶인 줄 알고 있지만, 옆에서 제 정신 가진 사람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삶을 이끌어가기도 합니다. 아마 오다가다 전철역 같은 데서도 그런 모습 가끔 보셨을 겁니다. 이상한 모자를 쓰고 기묘한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외치고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사교에 현혹되어 가출해서 가족까지도 버리고 심한 경우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이들 광신자들은 이 세상은 더 이상 살 가치가 없으며 죽으면 더 좋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때로는 여럿이서 집단자살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종교적 신념이라는 미명하에 무고한 사람을 해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노르웨이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라는 사람이 폭탄을 터뜨리고 총을 난사하여 90여명의 사람들을 죽인 끔찍한 사건이 있었던 것을 모두 기억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종교적 신념에 의하여 세계를 놀라게 할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태연해 했습니다. 특정 종교의 그릇된 신념이 한 사람을 이렇게 바꾸어 놓습니다. 그로 인해 어린이를 포함한 수많은 무고한 시민이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종교는 모두 같은 것이라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잘못된 종교에 발을 들여 놓음으로서 정상인의 삶을 살지 못하고 평생을 터무니없는 죄의식 속에서 마음을 괴롭히며 살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유럽의 중세 시대를 흔히 ‘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는 기독교가 가장 번성하던 시기입니다. 이때에는 전 유럽이 기독교 일색으로 교황이나 교회의 권위가 왕의 권력을 능가했습니다. 일반 백성들도 모두가 종교의 노예가 되어 암울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일상생활도 극도로 피폐해 있었지만 문화 전반이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인간성을 되찾자는 르네상스로 인해 이 시기는 종말을 맞았지만, 그 동안 교회나 성직자들의 횡포로 인한 민중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종교가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해악만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가히 종교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온갖 종교들이 판을 칩니다. 서양에서 들어 온 종교, 자생적인 종교 등등 거기에 가지에 가지를 친 여러 종교집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많은 종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욱더 삶의 가치 기준을 잃어버리고 시대의 흐름에 되는 대로 몸을 내맡기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종교가 없어서 정신이 이렇게 피폐해져 갑니까? 종교 인구가 적어서 사회가 이렇게 삭막해져 가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와 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종교인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이 갈수록 황폐해지고 사회가 점점 삭막해져 가는 것은 바른 종교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주와 인간의 실상을 바로 알고 바른 가치관, 바른 인생관을 지니도록 인간의 지혜를 일깨워줄 바른 종교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