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참회로써 거듭난 앙굴리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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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3-10 16:48 조회6,3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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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살라국의 수도인 사위성에 바라문 대신의 아들로 앙굴리말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원래의 이름은 무엇인지 모릅니다. 앙굴리말라라는 이름은 나중에 얻은 별명입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스승에게서 베다를 배웠는데 매우 총명해서 많은 학생들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으며 배워야 할 것은 모두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스승의 말이라면 무조건 듣고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스승 또한 앙굴리말라를 매우 아꼈습니다. 제자들이 앙굴리말라를 시기하여 스승의 아내와 간통을 했다는 소문을 퍼뜨렸지만 스승은 앙굴리말라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스승의 아내가 앙굴리말라의 남자다운 모습에 반해서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그를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앙굴리말라는 도리어 스승의 아내에게 그런 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랬더니 스승의 아내는 앙심을 품고 자기의 머리를 풀고 옷을 찢은 다음 앙굴리말라의 스승에게 앙굴리말라가 자기를 겁탈하려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본 스승은 그 말을 믿고 화가 나서 앙굴리말라에게 징벌을 내리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체력적으로는 20대의 앙굴리말라에게 당할 수가 없었으므로 계교를 써서 앙굴리말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너에게 가르칠 것은 다 가르쳤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비밀의 술법이 있는데 그것은 아침 일찍 성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의 머리를 자르고 그 사람으로부터 손가락 한 개씩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백 명을 죽이고 백 개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면 진실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앙굴리말라는 매우 놀랐지만 고민 끝에 스승의 말을 듣기로 하고 백 명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큰 길에 나가 사람을 죽이기 시작하여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었습니다. 앙굴리말라라는 이름은 손가락 목걸이를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소식을 듣고 그리로 가 보셨습니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자 손가락을 얻기 위해 부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뒤에서 습격을 하려고 다가갔지만 부처님의 너무나 의연한 모습에 앙굴리말라는 칼을 휘두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앙굴리말라는 다시 용기를 내어 부처님에게 칼을 휘둘렀지만 부처님에게 미칠 수가 없었습니다. 앙굴리말라는 계속 따라가면서 칼을 휘둘렀지만 부처님을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문이여, 멈추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는 여기에 멈추어 있다. 앙굴리말라여, 그대가 멈추어라.”고 하셨습니다. 앙굴리말라가 “어째서 그대는 멈추어 있지 않으면서 멈추어 있다고 하고 나는 멈추어 있는데도 멈추어있지 않다고 하는가?”라고 하면서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 해칠 마음을 버렸기 때문에 멈추어 있는 것이고 그대는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하여 자제심이 없기 때문에 멈추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앙굴리말라는 문득 이 말씀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 앞에 엎드려 땅을 치고 통곡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앙굴리말라를 데리고 가서 출가를 시켰습니다. 앙굴리말라가 저 같이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도 용서받을 수 있느냐고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회하여 증득한 자는 마치 바다에 흘러온 흙탕물이 맑아지듯이 과거의 죄업은 사라진다.”
그렇게 해서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이때에 파세나디 왕이 앙굴리말라에 대한 소식을 듣고 살인귀를 잡으러 손수 병정을 이끌고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살인귀를 잡으러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대왕이시여, 만약 그가 머리를 깎고 출가한 사문이 되어 살생을 버리고 남의 물건을 빼앗는 일도 하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는 지계자(持戒者)가 되었다면 당신은 그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왕이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그와 같다면 저는 그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그를 보호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흉악한 자가 어떻게 그와 같은 지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앙굴리말라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가리켰습니다. 과연 부처님의 제자가 된 앙굴리말라를 보니 이제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파세나디 왕은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물러났습니다.
“세존이시여, 언제나 부처님의 감화력의 위대함에 경배합니다. 앞으로도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들을 미혹에서 건져내시고 악업을 조복하여 주십시오.”
이후 앙굴리말라는 탁발을 나가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맞고 칼에 찔리면서도 죄과를 참회하며 인욕행(忍辱行)을 행했다고 합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앙굴리말라를 이렇게 타일렀다고 하십니다.
“비구여, 참을지어다. 그대는 그대의 행위에 대한 과보로서 저승에서 받아야 할 업보를 지금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앙굴리말라는 마침내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요즘 같으면 살인자는 실정법에 의거하여 처벌을 받겠지만 그 당시는 사회 환경이 좀 달랐던 모양입니다. 더구나 부처님께서는 국왕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지심으로 참회를 하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자기가 지은 죄업에 대한 과보는 받아야 합니다. 앙굴리말라는 탁발을 나갔을 때 사람들로부터 살인자로 비난을 받고 수도 없이 칼에 찔리고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것이 과보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과보를 달게 생각하고 기꺼이 감수함으로써 앙굴리말라는 마침내 아라한의 경지에 까지 오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자기의 죄를 참회하는 것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다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회를 함으로써 자기의 업장을 가볍게 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금을 그대로 먹으면 짜지만 물을 많이 타게 되면 그다지 짜지 않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받을 업장도 그런 식으로 참회를 통하여 희석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죄를 저질렀어도 지심으로 참회하면 그 업장이 희석될 수 있습니다. 죽을 업보를 받게 되어 있어도 지심으로 참회하면 몸 다치는 것으로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어느 종교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죄과에 대한 참회를 강조합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참회는 그 사람의 육체적인 기능까지도 향상시킵니다. 병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준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현재 과학실험에 의해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쁜 마음을 가지거나 화를 내면 혈액 속에 독성이 생긴다고 합니다. 반대로 자신의 죄과에 대해 참회를 하거나 불쌍한 사람을 보고 동정심을 가지게 되면 혈액 속에 면역 기능이 현저히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암 말기에 있던 사람이 참회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난 뒤에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는 것 등도 이러한 예입니다.


참된 믿음은 매일매일 자신의 죄과를 참회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오염된 항아리를 새물을 자꾸 들어부어 깨끗하게 하듯이 참회를 통하여 자신의 오염된 항아리를 세척해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에 무슨 물건이든지 담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창한 성불을 지향하기 전에 먼저 일상의 신행을 통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세척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불공을 드리고 염불을 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지 말고 자신을 깨끗하게 세척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하십시오. 그것이 진정으로 복을 얻는 길이며 불교공부의 첫걸음입니다.


-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