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불교의 포용성과 관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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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04 16:23 조회5,27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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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역사를 보면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들은 자기들의 신념을 확산시키기 위하여 많은 분쟁을 야기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독교의 십자군 전쟁이나 신교와 구교의 갈등, 그리고 근세에 선교사들을 앞세운 후진국에의 침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슬람교도 ‘코란이 아니면 칼을 받으라’는 유명한 말로 상징되는 것처럼 그 호전적인 성격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자기들의 종교가 평화의 종교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과거 인도에서 이슬람교도들이 불교 승려를 살해하고 사원과 불교 유적을 파괴한 것을 보면 그러한 강변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최근의 중동 분쟁이나 아랍권 사람들에 의한 테러 등을 보더라도 이슬람교도들이 좀 과격한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거기에 반하여 불교는 언제나 자비를 으뜸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불교의 포교를 위하여 총칼을 들이댄 적이 없었습니다. 2500년이라는 기나긴 불교의 역사를 통해 보면 불교는 그 확산과 전개 과정에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언제나 평화적인 방법으로 교화를 했습니다. 어리석음으로 고통 받는 중생들의 무명을 걷어주고자 무한한 자비심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피를 흘릴 일이 없었습니다.


  불교는 항상 평화적인 방법으로 포교를 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가 어떤 나라에 수입되면 항상 그 나라와 그 민족의 정신수준을 높여 주었고 문명의 질을 향상시켰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는 말할 것도 없고, 불교가 전파된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인도에서도 B.C.2세기에 전 인도를 통일하고 불교를 보호한 아쇼카(A?oka)왕이 불교적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릴 때는 온 영토가 평화롭고 문화가 발달했으며 국위가 선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될 때에도 우리의 고유한 전통과 아무런 충돌이 없었습니다. 왕이 강압적으로 불교를 믿으라고 칼을 휘두른 적도 없습니다. 불교를 위해 피를 본 적이 있다면 그저 이차돈 성사의 순교 정도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것은 불교를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자진하여 바친, 그야말로 순교인 것이지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 불교를 전파하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또 불교가 성하던 통일 신라나 고려시대에는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문화 수준이 높았으며 정신 수준 또한 높았습니다. 우리 문화유산의 70% 이상이 불교유산이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불교가 다른 종교처럼 무력이나 강압에 의하지 않고도 그 민족 고유의 문화나 전통과 충돌 없이 융화하여 널리 확산될 수 있었던 근본원인은 평화를 지향하는 불교의 자비와 관용의 정신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초기경전인 《아함경(阿含經)》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중에 부루나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서쪽의 미개한 수나라는 나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길을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부루나여! 서쪽 수나 사람들은 흉포하다고 들었다. 만약 그대를 꾸짖고 욕설을 퍼붓는다면 그때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부루나가 대답하기를,
  “세존이시여!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참으로 착한 수나 사람들이구나. 그들은 나를 손으로 때리지는 않았다.’ 라고.”
  “그러면 부루나여! 만약 그들이 손으로 그대를 때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참으로 착한 수나 사람들이구나. 그들은 아직 몽둥이로 나를 때리지는 않았다.’라고.”
  “그러면 부루나여! 만약 그들이 몽둥이로 때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참으로 착한 수나 사람들이구나. 그들은 나를 괴롭히기는 하여도 아직 칼을 쓰지는 않는구나.’라고.”
  이런 식으로 마지막에는 “수나 사람들이 그대를 죽이려 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석가모니부처님의 물음에 부루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육신의 병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수나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버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말 감격스러운 장면이 아닙니까? 부루나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미개한 사람들을 제도하려는 이러한 자비의 정신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그의 전도 여행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자기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상대방을 포용하면서 바른 가르침을 전하려는 무한한 자비의 정신을 강조합니다. 절대로 강압적인 방법이나 무력을 앞세워 선교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아함경》에는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 당시에 우빨리라는 명망 높은 자이나(Jaina)교도가 있었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훌륭하다는 소문을 듣고  논쟁을 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이 우빨리라는 자이나교도는 석가모니부처님의 합리적인 설교에 설복 당해 부처님께 귀의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같은 명망 있는 자이나교도가 불교도가 된다면 자이나교의 많은 사람들이 동요할 테니 신중을 기하라.”고 하시면서 도리어 충고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이나교도인 시하라는 장군이 불교로 개종하려고 했을 때에도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당신과 같이 명망 있는 사람이 가벼이 자신의 신앙을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고 타이르셨습니다. 또한 이 사람이 여러 번의 간청에 의하여 불교에 귀의한 뒤에도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불교의 스님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이나 교도에게도 변함없이 보시하라고 타이르셨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불교에 귀의하는 것이 타종교를 부정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의 어떤 학자들은 불교의 이념이 모든 종교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까지 말하기도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처럼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부터 자비에 바탕을 둔 포용과 관용의 정신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어떤 사람이 개종을 하면 그것을 자기들의 종교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선전하며 그것을 빌미로 타종교와의 세력 다툼을 일삼는 것과 비교하면, 불교의 이러한 포용성과 관용성은 현대의 종교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하는지를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교의 자비의 정신은 불교가 평화의 종교로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세계적인 종교로 확산되는 이유입니다. 현재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불교가 기존 종교를 제치고 가장 많은 신자 수를 확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유럽 지역은 불교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으며, 구미의 지식인들 중에는 불교의 자비 정신에 매료되어 불교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서양 철학자들 사이에서 불교의 근본사상이 모든 종교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자비에 바탕을 둔 불교의 관용성과 포용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