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정견(正見)을 바로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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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22 15:21 조회6,09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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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견(正見)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정견은 바른 견해를 말합니다. 견해라는 것은 사물을 관찰하고 상황을 판단하며 결정을 하는 데에 있어서의 바른 통찰력과 생각을 말합니다.
견해가 바르지 못하면 어떤 일을 할지라도 잘못된 길을 가게 됩니다. 대통령이 욕을 먹고 사회 지도자들이 손가락질을 받는 것도 바른 견해를 지니지 못하고 사태에 대처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릇된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도 견해가 바르지 못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견해가 발라야 모든 것을 바르게 처리할 수 있고 대중들을 이끌더라도 바르게 이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견이 없는 사람은 좋은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해악을 끼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견이 없는 사람은 누구를 도와주더라도 도리어 그 사람의 의뢰심만 키워서 그 사람을 망치게 하기도 합니다. 국가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단체나 조직의 지도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지 못하면 그 구성원들 또한 막심한 피해를 보게 됩니다. 바른 견해를 가지는 것은 이처럼 한 개인의 운명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대중들의 명운도 좌우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견해는 반드시 불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견을 가진다는 것은 수행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바른 견해를 가지기 위해서는 치우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른 견해를 가지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는 일의 본질을 알고 그것을 중심으로 폭넓은 지식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 공명정대한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 그 집단은 더욱 성숙하고 발전하며 안정된 곳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불교에서 어떤 것을 정견이라고 하는가?
불교에서 말하는 바른 견해란 불교적인 바른 세계관, 인생관으로서의 연기의 도리와 삼법인, 사성제에 대해서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분별성제경(分別聖諦經)》에 보면 정견에 대하여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정견인가? 이른바 성인의 제자는 고를 고로 생각하고 집을 집이라고 생각하며 멸을 멸이라고 생각하고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거나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환을 보거나 열반과 그치어 쉼을 보며, 혹은 집착이 없는 착한 마음의 해탈을 생각하여 관찰할 때 두루 가리어 가진 법을 결정하며, 두루 보고 관찰하여 훤히 안다. 이것을 정견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정견이란 사성제에 대한 관찰을 여실히 알며 업과 행, 그리고 해탈에 대하여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팔정도에서도 정견을 가장 첫머리에 놓는 이유는 견해가 바르지 못하면 무슨 일을 하던지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른 견해를 가지지 못하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정진을 하는 것이 다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바른 견해를 가지지 못하고 정진을 하게 되면 아집과 독선만 기르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계율을 잘 지킨답시고 무게를 잡는 율사들 중에는 곁에 가기도 싫을 정도로 찬바람이 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른 견해가 없었기 때문에 계율을 지키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계율 그 자체에만 집착한 나머지 그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분별성제경》에서도 설한 것처럼 불교도로서 바른 견해를 가지기 위해서는 한 마디로 불교공부의 기본이 되는 사성제를 바르게 알고 궁극적 목적인 열반을 추구하며 항상 자신의 언행과 생각을 살피고 치우침이 없는 바른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의 이익을 탐하고 명예에 집착하며 성내는 마음을 지니고서 바른 견해를 지니기를 기대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렇게 보면 정견을 지니기 위해서는 마음공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자리가 바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정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정견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마음자리가 바르지 못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견을 지닌다는 것은 도의 전부를 이룬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팔정도의 첫머리에 정견을 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공부를 하려면 먼저 바른 견해를 지니도록 해야 합니다. 정견이 없이 수행을 한다면 그야말로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