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신을 믿는 종교와 진리를 믿는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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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4-14 09:33 조회7,8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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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영국 런던에서 아인슈타인의 <무신론편지>라는 것이 블룸스버리 옥션스라는 경매회사를 통하여 40만4천 달러에 어떤 물리학자에게 낙찰되었다고 합니다. 이 편지는 아인슈타인이 1954년 철학자 에릭 구트킨트에게 보낸 것인데 그 내용이 기독교인들에게는 무척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내게 신(God)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 또는 산물에 불과하다.”
  이 말은 곧 서양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던 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어서 아인슈타인이 유태인이라는 것을 자랑하며 그를 기독교도로 몰아붙이려던 많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지난 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서 아직도 그를 능가하는 사람이 없는 터인데 그런 그가 신의 존재를 이렇게 부정해 버렸던 것입니다. 또 그 편지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Bible)은 상당히 유치하고 원시적인 전설들의 집대성이며, 아무리 치밀한 해석을 덧붙이더라도 이 점은 변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가장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세기 최고의 과학자가 기독교인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성경을 이렇게 표현했으니 그들은 아마 아인슈타인을 사탄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교도의 입장에서는 이런 말이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불교도가 아닐지라도 제대로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이나 바이블을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까요? “성경에 아무리 치밀한 해석을 덧붙이더라도 이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 말에 참으로 공감이 갑니다. 호주에 서식하는 캥거루의 일종은 그 기원이 3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천지창조의 기원은 기껏해야 6천여년 밖에 되질 않으니 이성이 있는 사람이 성경의 말을 믿으라면 도저히 수긍이 가질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우선 성경을 믿고 보자는 식이지요. 조금치의 의심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기독교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불교 이외의 모든 종교는 신을 인정합니다. 신이 천지를 만들었고 신이 인간과 모든 만물을 창조했으며 나약한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는 것이 불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종교의 공통점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연기론에 입각한 철저한 무신론입니다. 대승불교에서도 신과 비슷한 개념을 설정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러한 매개체를 통하여 우리 자신과 진리를 더욱 분명히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서양에 처음으로 불교가 소개되었을 때에는 불교가 과연 종교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습니다.

서양의 철학자나 신학자들 중에는 불교를 일종의 윤리체계나 철학체계로 파악하고 종교라고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불교는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창조주나 절대적인 신을 내세우지 않으면 종교가 아닌 줄로 아는 그들만의 유일신관(唯一神觀)에서 불교를 바라본 입장입니다.

그들은 불교의 합리적인 교리체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교가 종교라면 마땅히 신을 섬겨야 하는데 왜 불교도들은 신을 섬기지 않는지에 대해서 의아해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처님이 그렇게 위대한 분이라면 어찌 감히 한낱 인간이 수행을 통하여 부처와 같아지려는 생각을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처럼 서양인들이 말하는 종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종교는 개념의 차이가 큽니다. 이런 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종교라는 말을 살펴봐야 됩니다. 이 ‘종교(宗敎)’라는 말은 원래 중국에서 만들어진 불교용어입니다. 불교에서는 각각의 사상적 견해인 ‘종(宗)’을 설하는 가르침이라고 하여 ‘종교’라는 말을 썼습니다. 수나라의 연법사(衍法師)라는 분이 불교에 대하여 네 가지 종교의 구별을 세운 이래, 기사법사(耆?法師)라는 분이 여섯 가지로 종교를 구분했습니다. 또, 《종경록(宗鏡錄)》이라는 책에서는 종교를 정의하여 ‘언어로는 나타낼 수 없는 궁극의 진리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한 가르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삼론종이나 화엄종, 천태종 등과 같은 불교내의 어떤 종파의 교리를 나타낸 것을 ‘종교’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즉, 불교의 요점을 설명하는 문자나 언설의 의미로서 사용된 것이 바로 이 종교라는 말이기 때문에, 서양의 종교가 들어오기 전의 옛날에는 종교라고 하면 불교 이외에는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종교라는 말 자체가 불교 용어이기 때문에 불교를 종교라 부른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양문물이 밀려오면서 영어의 ‘religion’이라는 말의 번역어로서 이 종교라는 말이 채택되고 나서부터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혼란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 일본인들이 처음으로 religion을 ‘종교’라고 번역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어쨌든 이때부터 불교는 물론 기독교, 이슬람교도 모두 종교라고 부르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자생적인 여러 가지 신앙도 종교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서양의 ‘religion’이라는 말은 대체로 그 어원에 근거하여 보면, ‘신과 인간의 결합 내지 교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의 시각에서 religion이라고 하면 반드시 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이 있어야만 종교가 성립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눈에는 신을 믿지 않는 불교가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신(God)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 또는 산물에 불과하다.”라고 한 것처럼 다른 종교는 자신의 나약함을 신이라는 것을 상정하여 의지하려고 합니다. 신이 있으면 편리하기는 합니다. 모든 것을 신의 탓으로 돌려버리면 되니까요. 그러나 불교는 연기(緣起)와 공(空)으로써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자기가 지은 것은 자기가 받고 모든 것은 인연화합의 결과로써 이루어진다는 합리적인 사고로써 우리 인생의 실상을 들여다 봅니다. 그래서 신에 의지하고 모든 것을 신의 탓으로 돌리는 기독교는 변명의 역사라고 하지만 불교는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욱 각광 받는 종교가 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