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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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명심 전수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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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07-10 16:12 조회3,048회

본문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心如工畵師(심여공화사)


- 보명심 전수 -

 

마음가짐에 따라 우리의 행동과 생활이 바뀝니다.

마음이 휘둘리지 않고 상처받지 않게 살아가려면 내 마음의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습하고 훈련하고 수행해야 합니다.


 

마음공부는 왜 하는가? 인간이 가진 본래의 참마음(본성)을 찾아서 참되고 복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의 원리를 궁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이며 인간의 주인이 되며 왕이고 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가짐에 따라 우리의 행위와 생활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위대하기 때문에 마음으로 못하는 것이 없고 가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心如工畵師(심여공화사)’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으며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작가와 같다고 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나와 인연된 세상 모든 것은 나의 마음먹기에 따라 낙()도 고()도 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종조법설집에서 자기마음 스승으로 하는 사람은 모든 번뇌를 여의고 밝은 지혜를 얻어 참스승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마음을 스승으로 하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하는데 막상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게 나의 마음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누구의 아내, 남편, 엄마, 자식 등으로 어렴풋하게나마 나를표현하기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마음은 뭐지?’ 내 가슴속에 무언가 있는 것 같은데 내보일수 없는 것이 마음인 것 같습니다.

마음이 왜 행복할까? 왜 아플까? 왜 허전할까? 왜 화가나지? 살면서 이런 생각들을 해보신적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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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삶은 고통의 바다라 했습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의 실존이고 정체성입니다. 어릴 때부터 가파른 환경으로부터 만들어진 실체인 것이지요.

마음은 내 것인 것 같으면서도 내 것이 아닐때가 많습니다.

나의 마음이 온통 남의 객체 속에 파묻혀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때

가 많습니다. 남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아파하고 고민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온통 바깥에 의존하고 의지하기 때문에 바깥말에 휘둘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나라고 생각 하면서도 주인으로 살기가 힘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문화가 배재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못 먹고 살 때는 먹고사는 의식주와 물질풍요에 중점을 두었고 먹고 살만하니 건강이 최고라 하며 웰빙(well-being)이니 자연식 먹거리의 열풍이 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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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풍요와 먹거리가 해결되니 다 채워진 것 같았는데 왜 마음이 허전하지? 왜 마음이 불편하지? 왜 마음이 만족하지 못하지? 마음이 원만하지 못해서 마음의 평화와 본성을 찾아서 헤매게 됩니다.

인간은 생존본능으로 바깥 모습의 대상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회적 지위·모습·외모··명예 등등이 있습니다. 또 마음은 생각과 감정의 지배를 받습니다. 바로 기쁨·슬픔·두려움·쾌감 등이죠. 즉 오감에 의해 즐겁고 행복하고 불안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흔들리며 상처받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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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은 에고(ego)를 만들어 냅니다. 에고는 자아·집착·아집·고집·편견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칠정망상으로 맞다-틀리다, 높다-낮다, 달다-쓰다, 좋다-나쁘다 등등 오감에 미혹되고 유혹을 당하면 대상에 지배되고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휘둘리지 않고 상처 받지 않게 살아가려면 내 마음의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습하고 훈련하고 수행해야 합니다. 정체된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물이나 대상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어려운 일, 번뇌스러운 상황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하게 되면 모든 것이 원만하게 물 흐르듯 잘 흘러 갈 것입니다.

마음을 가라 앉쳐서 조용히 눈을 감고 대상인 부모, 남편, 아내, 자식, 나의 어린 시절 등 살아온 날들을 사랑으로 연결된 대상에게 순수한 참마음으로 만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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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조님께서는 법설을 통해 안을 닦지 아니하고 밖을 보호하려 함은 원래 그릇된 것이라 복이 안에 솟아남을 미처 알지 못하고서 동쪽이나 서쪽에서 옴과 같이 생각하니 어리석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나는 어떤 시선, 어떤 생각, 어떤 마음으로 내 안의 나를 알아차림하고 있습니까?


순수 욕망으로 에고(ego)를 느끼는 나를 인식해야 합니다.

나의 자아인 에고(ego)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잘 살펴보면 여태껏 보지 못한 나의 모든 것들을 보게 됩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볼 수 있는지? 상대가 나를 제대로 볼 수 있는가? 나는 나를 어떤 기준으로 볼 수 있는지? 상대 역시 어떤 잣대로 나를 말 할 수 있는지?

결국 나를 알 수 있는 것은 나의 성찰과 알아차림일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생각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도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인연된 편안한 마음으로 용맹정진 하시어 마음해탈 하시기를 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