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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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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5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2-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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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2-04 13:24 조회 1,7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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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연명의료 (33회)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보다 단순하고, 보다 간단하게 사는 것’ 스님의 무소유는 말 그대로 ‘텅 빈 충만’

“죽음이 어느 때 우리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우리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육신을 70년, 80년 끌고 달리면 부품 교체가 아니라 폐차 처분할 때가 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육신의 죽음을 끝이라고 보면 막막하게 되지만,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본다면 어떤 희망이나 기대를 하게 된다.  우리는 평소에 그런 훈련을 많이 받아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담담하게 건너갈 것 같다.

2007년 겨울, 폐암으로 미국에서 항암치료를 받은 후 법정 스님은 ‘고마움’과 ‘나눔’을 자주 이야기했다. 수행자답게 생사의 문제에 담담했던 스님은 2009년 다시 병이 재발하자 주위에서 수술을 권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병실을 찾은 청학 스님이 물었다. 


생과 사의 경계가 없다고 하는데 지금, 스님은 어떠십니까?” 말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던 스님은 종이에 “원래부터 생과 사가 없이”라고 쓰며 생사를 초월한 모습을 보여줬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 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 버린 헌 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 데서나 다비(茶毘)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병상에서 스님은 병시중을 드는 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지금 내 소원은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하루빨리 다비장 장작으로 올라가는 것이야!” 보다 단순하고 보다 간소한 삶을 추구하셨던 스님은 허례허식의 장례절차가 이뤄진다면 죽은 시신이라도 벌떡 일어나 그만두라고 소리칠 테니 내 뜻에 따르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스님의 생전 소원은 ‘보다 단순하고, 보다 간단하게 사는 것’이었다. 사는 곳이 번거로워지면 ‘버리고 떠나기’를 통해 당신의 초심을 잃지 않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통해 사후 장례절차까지 철저하게 당부하셨다. 입적 하루 전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다.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하여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삼일장 하지 말고 지체 없이 화장하라.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고 사리를 찾지 말고 탑, 비도 세우지 말라.”


서로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진흙탕 싸움의 현실 세계에서 스님은 ‘비어있으나 충만한’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무소유」, 「텅 빈 충만」 등 수많은 스테디셀러를 쓴 스님은 인세 전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소리 없이 나눠주고는 그 일을 깨끗이 잊었다. 남을 도왔다는 생각마저도 놓아버린 스님의 무소유는 말 그대로 ‘텅 빈 충만’이었다.


소유를 범죄처럼 생각했던 간디에게 깊이 공감한 스님은 관도, 수의도 없이 평소에 입던 기사 그대로 걸치고 좁은 평상에 누운 채로 다비의 불길에 들어갔다. 그 흔한 꽃도, 만장도, 추도사도, 임종게     (臨終揭)도 아무것도 없었다. 스님은 ‘무소유’를 평생 설파했고,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그 길을 좇았다. 스님이 남긴 무소유, 그 텅 빈 충만은 신선하고 활기 있는 큰 울림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언어는 공허하다.”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스님은 법문 마지막을 다음 같이 맺었다.

“내 말은 이쯤에서 끝내니까, 나머지 이야기는 봄에 피어나는 저 찬란한 꽃들에게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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