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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빠의 스승, 미뜨라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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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4-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정성준 교수의 밀교 인물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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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교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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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4-02 14:35 조회 1,8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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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빠의 스승, 미뜨라요기
관세음보살의 관정을 받아 수행의 장애를 물리쳐 / 미뜨라요기 저술, 티벳불교 완성 기여에 공로 커
대학강단에 첫발을 들인 지 30여년의 시간이 흘러 후학들의 학문이력을 쌓을 기회를 주기 위해 3년 전부터 강의를 고사하였다. 
생각과 달리 밀교전공자가 많지 않아 최근에는 다시 강의 요청이 있는 지경이 되었다. 밀교뿐만 아니고 불교학계 자체가 전반적으로 쇠락하는 중이지만 미래 전략과목인 밀교와 티벳불교의 위축은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논문심사 요청이 짬짬히 있는 처지인데 지난 주 심사논문에서 저자는 요약하면 인도 나란다사의 스승들이 현대 학자들에 의해 밀교에 친숙했던 것처럼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심사평에는 인도와 동아시아를 오간 나란다대학의 승려들을 이해하기 위해 인도 후기 대승불교를 연구할 필요가 있고, 티벳불교를 이해하지 않으면 동아시아에 이루어졌던 불교교류사 전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역설했다. 

인도에는 밀교아사리들이 많았다. 이름 전하길 구차하게 생각해 숨은 스승들까지 포함하면 무수한 별처럼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인도밀교가 티벳에 전해질 때 한 갈래는 중인도 나란다사이고 다른 한 갈래는 동인도 위끄라마실라사로  벵갈, 오릿사에 인접한 곳이다. 미뜨라요기는 불교가 무슬림에 의해 쇠망해가던 12, 13세기의 인물로 오릿사 라다출신이었다. 
틸로빠의 스승이었던 라리따와즈라의 제자였기 때문에 틸로빠와 동학인 셈이다. 스승은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12년간 참구하도록 가르쳤는데 미뜨라요기는 깊은 선정에 들어 관세음보살로부터 직접 구전을 들었다. 「청사」에 따르면 미뜨라는 많은 이적을 행한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불교도를 힌두교로 개종시키려는 왕들의 협박이나, 무슬림침공에 의해 불교사원이 파괴되고 승려가 살해될 때 기적을 행한 이력이 많았다. 

미뜨라요기는 장작더미에 사흘간 태워도 살아남았으며, 무슬림인 술탄칸의 침공으로부터 오단따뿌리사의 12,000 승려를 구할 때는 벗은 몸으로 지진을 일으켜 사람과 동물을 떨게 만들었고, 술탄칸의 조복에 맞추어 비로소 이적을 멈추었다. 와라나시의 왕으로부터 귀의를 받았지만 구속되지 않았으며, 불교도를 압박하던 야샤왕을 불교도로 개종시켰다. 
미뜨라요기는 야샤왕으로 하여금 눈앞의 나무왕관을 옮길 수 있으면 불교도가 힌두교로 개종할 것이고, 나무왕관을 옮기지 못하면 힌두교도들이 불교로 개종할 것을 약속하였다. 초월적인 힘으로 나무왕관이 꼼작도 안하자 결국 왕은 감복하여 불교도로 개종하였다. 또한 자야세나왕과 외도학자 아난다가 미뜨라요기를 살해하였으나 오직 삼매의 힘으로 마음을 조복하여 개종시켰다.

티벳불교의 닝마빠의 전승에서 예셰초걀의 전기에 등장하는 미뜨라요기는 처음에는 유부의 계율을 받고 나란다마하위하라에서 공부하였으며 티벳이름으로는 ‘랍뚜곌외하’라고 하였다.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수행하였지만 그 계기는 외눈의 불모인 ‘에까자띠’의 지도를 받았고, 유명한 ‘쬐’ 수행을 닦을 때 에까자띠가 자신의 목을 자를 때 해골에서 빛이 쏟아져 나와 관세음보살과 그 권속의 변신이 나왔고, 이들로부터 108가지 성취를 이루자 에까지띠는 다시 전처럼 회복되었다고 하였다. 에까자띠는 미뜨라요기로 하여금 우디야나로 보내 밀교를 복구하도록 하였는데 우디야나는 8, 9세기 활동한 빠드마삼바와의 고향으로 미뜨라요기가 설법할 때에 그 화신이 항상 옆에 동참하여 증명였다고 하였다. 

미뜨라요기가 관세음보살의 관정을 받을 때 관세음보살은 밀교의 법구인 작은 소북인 다마루를 주면서 수행의 장애를 물리치도록 하였다. 미뜨라요기는 어느날 길을 가다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을 만났는데 갑자기 마녀로 변신하지 미뜨라요기는 다마루의 북소리로 마녀를 두 동강 내었다. 

이어 자비심이 넘쳐 다른 북소리로 마녀를 이전같이 해주자 마녀는 다시 붉은 옷을 여인으로 변신하고 미뜨라요기를 섬기기로 하였다. 이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생기차제와 구경차제의 수행을 완성할 때까지 다마루를 가지고 신력을 부리지 말도록 조언 하였다. 

미뜨라요기가 전하는 신통의 일화는 그를 전설적 인물로 생각하게 만들지만 실제로 티벳불교의 완성에 그의 저술이 기여한 공로는 적지않다. 쫑카빠의 「보리도차제론」에는 미뜨라요기가 쓴 <찬다왕에게 보내는 편지> 가 중사도품에 인용되고 있는데, 본명 자야찬드라왕은 붓다가야의 비석에도 그의 스승을 슈리미뜨라라고 하여 이름이 보이고 있다. 자야찬드라왕은 우딸브라데쉬를 포함한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고, 불교와 힌두교를 함께 믿었으나 1194년 무하마드 구리라는 무슬림과의 전쟁에서 패해 죽었다. 미뜨라요기는 생전에 불법에 입각해 삶의 무상함과 권력의 무상, 법을 닦아야 하는 이유를 역설한 것을 내용으로 함고 있다. 

미뜨라요기는 1197-1200 사이 붓다슈리갸나로부터 그의 명성을 들은 역경사 또뿌에 의해 중앙티벳에 초청되었고 그가 남긴 「백팔미뜨라전집」은 밀교 만달라와 성취법을 모은 것이다. 미뜨라요기 전집은 티벳불교의 겔룩빠와 가규빠에 의해 깊이 연구되었고, 쬐수행을 전한 마칙쌍계페마를 비롯해 무수한 제자들을 티벳에서 길러내 티벳불교에 큰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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