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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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정통밀교종단 ‘총지종’ 창종/정통밀교종단의 탄생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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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3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8-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창종 50주년 특집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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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8-03 13:04 조회 7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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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총지종의 역사 (회)

02. 정통밀교종단 ‘총지종’ 창종/정통밀교종단의 탄생①
1972년 12월 24일, ‘불교총지종(佛敎總指宗)’을 창종하다

한국전쟁의 상흔은 질기도록 오래갔다.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발버둥치는 하루하루는 너나없이 눈물겨웠다.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만으로도 힘겨운 때에 거듭되는 남북한의 긴장과 대치는 불안을 가중시켰고 정치적 혼란까지 이어져 사회는 온통 어지러웠다. 질병고와 민생고에 더해 정신적 방황도 계속됐다.


‘불교계 역시 극심한 혼란과 대립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정화유시로 촉발된 비구승 계열과 대처승 계열의 대립은 날이 갈수록 심화됐다. 일제잔재의 청산을 과제로 시작된 정화운동은 법정 소송과 난투극으로까지 번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달았다. 정화의 원칙과 방법론을 둘러싸고 이견과 갈등이 속출하는 가운데 일부에서 통합과 화합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오랜 분쟁은 1970년 1월 한국불교 태고종의 창종으로 일단락되었다.’ <동아일보, 1963년 8월 12일, 조지훈 ‘한국불교를 살리는 길>


일제 잔재의 청산과 역사적 정통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찰 주도권을 둘러싼 분규와 폭력으로 얼룩진 불교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따가웠다. 수행풍토는 무너졌고 불교의 위상과 신뢰는 하락했다.
가난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하는 이들을 감싸 안고 바르게 이끌어야 할 불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많은 이들이 신문물을 매개로 한 서구종교로 떠나거나 갖가지 신흥종교에 현혹되었다. 오랫동안 불교를 믿고 살아온 불자들은 갈 곳을 잃었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힘든 일상생활 속에서도 가까이에서 의지할 수 있는 바른 불교, 참된 진리였다.


1972년 12월 24일, 원정 대성사를 비롯하여 열화와 같은 신심으로 뜻을 함께하는 교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드디어 정통밀교종단의 창종을 선포했다.
전 교도가 상봉동 서울선교부에 모여 총지종 개종불사 및 창종식을 거행했다. 종단명을 ‘불교총지종(佛敎總指宗)’으로 천명한 대성사는 “법신 대일여래를 교주로 하고 육자대명왕진언을 본존으로하여 대승장엄보왕경과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을 소의경전으로 삼으며 또한 태장계와 금강계 양계의 모든 경궤를 보조경전으로 하여 삼밀(三密)과 육행(六行)을 수행의 덕목으로 하여 당상즉도(當相卽道) 즉사이진(卽事而眞) 색심불이(色心不二)의 원리에 입각하여 복지쌍수(福智雙修)로 사리를 구현함으로써 현세정화(現世淨化)와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윤원대도(輪圓大道)를 얻게 하였다. 특히 이원진리를 밝혀서 물심병진법(物心倂進法)을 가르치는 한편, 시시불공(時時佛供) 처처불공(處處佛供), 생활시불법(生活是佛法) 불법시생활(佛法是生活)의 진리를 체득하게 하는 동시에 활동하며 닦고 닦으면서 활동하는 것을 실천하게 하는 방편을 세움으로써 완전한 교상이 확립되었다.”고 선언했다.


현교에 대한 밀교의 특색으로서 다음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① 역사적 인물인 석존의 설법을 현교라 하고 영원한 진리를 불격화한 법신대일여래의설법을 밀교라 한다.
② 각오(覺悟)한 내용에 대하여 말이나 문자로써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현교요, 상징을 통하여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밀교며
③ 현교는 장기간(三劫) 수행을 거쳐서 성불이 가능하다고 하나, 밀교는 삼밀(三密)의 유가(瑜伽)에 의하여 현세에서 즉신성불한다고 설하며
④ 밀교는 많은 훌륭한 특색을 가지고 사람마다 불가사의한 현세이익을 주고 현교는 염불왕생이나 수행각오를 주로 설한다.
현교는 심본색말(心本色末)을 주장하나 미래중심의 유심적인 불교이므로 결국은 사후 불교가 되며 밀교는 색심불이(色心不二)를 주장하니 현세 중심의 현실적 실천불교가 된다. <『종조법설집』 중 ‘현밀이교의 비교’>


특히 총지종의 공공서원으로서 ‘총지종 교세 발전’, ‘일체교도가정 소구여의’, ‘일체교도가정 제재난’과 함께, 밀교 특유의 진호국가법으로 북한의 재남침과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자 ‘부국강병 국태민안’, ‘조국평화통일’을 공공서원으로 선포했다. 공공서원의 기본 틀은 오늘날까지도 유지 계승되고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정통밀교가 주옥같은 진언, 정확한 인계, 엄격한 의궤 등 논리 정연한 삼밀의궤의 교리와 사상을 갖추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진각종에서 20여 년 동안 교화의 중심에서 활약한 원정 대성사는 창종 전 이미 수행법과 교전은 물론, 종단의 제도와 행정체제의 구상을 마쳤다. 그런 만큼 창종 이후 제반 제도와 직제를 구비하는 시간은 크게 단축되었다.


1973년 6월 27일 당시 총지종의 총본부인 서울 성북구 종암동 123번지 성북선교부에서 전국의 교역자와 교무가 모인 가운데 전국 총회를 개최했다. 임시의장 록정 정사의 사회로 종헌을 심의 가결하고 만장일치로 원정 대성사를 종령으로 추대했다. 자문위원 6인, 종의회 의원 15인을 구성하고 초대 통리원장 현수 정사를 비롯해 총무부장, 교정부장, 재무부장, 사회부장 등 6인의 원의회 의원을 구성했다. 곧바로 역사적인 제1회 강공회와 종의회, 원의회를 개최하여 종단의 직제와 행정 및 심의 기구를 확정했다. 종단의 최고의결기관인 종의회와 행정기구인 통리원 및 원의회를 구성함으로써 수행과 교화를 뒷받침할 종단의 행정과 심의체계를 완벽하게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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