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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 괜찮아,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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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12-29 14:27 조회2,7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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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다 괜찮아

 

단톡방에 털실로 짠 보온병 주머니 사진이 올라왔다. 친구의 얌전한 솜씨를 증명이라도 하듯 세 개의 주머니가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 여간 예쁜 게 아니었다.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보온병이나 텀블러를 벌거숭이로 들고 다닐 줄만 알았던 내게 그것들은 신문물이나 다름없었다. 언젠가는 나도 한번 도전해 보리라, 내 손으로 만들어진 멋진 주머니를 상상하며 사진을 다운로드해 놓았다. 제법 꼼꼼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내 실력에 은근한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뭔가 뚝딱 만들어낼 것 같던 다부진 결심은 털실이 없다는 핑계 속에 유야무야 기억의 저편으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보온병 주머니를 다시 생각해낸 건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모 센터에서였다. 우연히 들른 뜨개질 봉사 동아리방에서 올망졸망 갓난아이 주먹만 한 자투리 실 뭉치를 발견한 순간, 못다 한 숙제처럼 보온병 주머니가 떠올랐다.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에게 드릴 목도리를 뜨고 남은 것이라 더 이상의 소용 가치를 잃은 자투리 실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부활이라도 하듯 그렇게 내 손에 넘겨졌다.

 

보온병 주머니 짜기는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는 목도리도 짜고, 아이가 어렸을 때는 조끼며 코트도 만들어 입혔건만 아, 옛날이여! 바닥 뜨기는 그럭저럭 됐는데 둘레를 만들어 올라가는 게 영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 동영상을 찾아보며 떴다가 풀기를 여러 번. 보온병보다 주머니의 크기가 작거나 커서, 무늬가 예쁘지 않아서, 중간에 코를 빠뜨려서, 색깔 조합이 이상해서, 지나치게 빡빡하거나 느슨하게 떠져서. 무슨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후손에게 길이 물려줄 불후의 명작을 만드는 것도 아니니 어지간한 것은 대충 넘겨도 좋으련만. 성격 탓 반, 실력 탓 반, 나의 뜨개질은 좌충우돌 지지부진의 연속이었다.

 

인생이 그러하듯, 그럴 때는 잘못된 부분까지 풀어서 다시 뜨는 게 답이었다. 인생이 그러하듯, 빨리 완성시키고 싶은 욕심에 에라 모르겠다, 눈 감고 넘어가 보기도 하지만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그 부분이 결국은 거기까지의 수고마저 허사로 만들기도 한다. 인생이 그러하듯, 예기치 않게 도중에 실이 엉키는 일도 생긴다. 웬만한 것은 가닥을 잡아 풀어 본다지만 심하게 뒤엉켰을 때는 미련 없이 가위로 싹둑 잘라내는 게 최고의 해결책일 수도 있다.

 

보온병 주머니 같은 소품이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품이든 그것을 위해 실을 고르고, 첫 코를 뜨고, 어떻게 하면 더 멋진 것이 될까 고심하면서 떴다가 풀고, 풀었다가 뜨기도 하는 일이 어쩌면 그리도 우리네 인생살이와 같은지. 솜씨가 좋아서 단번에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열 배 스무 배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처럼 제자리걸음인 사람도 있고, 제풀에 지쳐 손을 털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은근과 끈기로 끝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인생 역시 뜨개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하나의 뜨개 작품이 만들어지듯 우리네 인생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단단해지고 깊어져 마침내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서툰 솜씨라도 한 코 한 코 떠나가야 무언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더딘 걸음이라도 한 발 한 발을 내디뎌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인 바, 뜨개질이든 인생이든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것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라는 생각도 든다.

 

수도 없이 풀었다 뜨기를 거듭한 끝에 들쑥날쑥 고르지 못한 무늬에 자투리 실을 이어 만든 것이라 색깔마저 생뚱맞은 최고의 걸작(아전인수 격 찬사)’ 보온병 주머니가 완성됐다. 모양이야 어쨌든 벅찬 성취감만은 정말 최고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작품의 감동 운운하는 호들갑과 함께 단톡방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친구들의 반응이 더 재미있었다. 실을 다루는 솜씨가 과감하고 자유분방하다느니, 제멋대로인 색깔이 난해한 추상화 같다느니, 너무 귀한 것이라 도난의 우려가 있으니 깊숙한 곳에 고이 간직하라느니. 단톡방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면 됐다. 내가 기쁘고, 우리가 함께 즐거울 수 있는데 무얼 더 바라겠는가. 내 보온병도 벌거숭이 신세를 면하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나도 훌륭한 주인이지 않은가 말이다.

 

뜨개질은 내게 인생 역시 리셋(reset)이 가능하다는 커다란 깨달음도 선사했다. 한 코 한 코 공들인 많은 시간이 있었기에 어설프게나마 보온병 주머니가 만들어졌듯이, 그렇게 만들어진 주머니는 그 시간보다 더 오래도록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것이다. 떴다가 풀었다가, 다시 떴다가 또 풀었다가, 그렇게 완성되는 뜨개질처럼 가다가 넘어지고, 일어서서 가다가 또 주저앉고, 그런 되풀이가 인생일 것이다. 풀어야 다시 뜰 수 있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야 나아갈 수 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현재를 열심히 사는 일, 그게 시작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3층 누각을 본 어리석은 사람이 유명한 목수를 불러 그것보다 더 훌륭한 누각을 짓게 했단다. 땅을 고르고 나무를 깎아 기둥을 세우고 벽돌을 쌓아 올리는 목수를 지켜보던 그가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평범한 1, 2층이 아니라 멋진 위용을 자랑하는 3층이니 3층부터 먼저 지으라고 다그쳤다. 그는 아래층을 짓지 않고 둘째 층을 지을 수 없고, 둘째 층을 짓지 않고 셋째 층을 지을 수 없다는 목수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끝까지 3층 먼저를 고집했고, 결국 목수는 연장을 챙겨 떠나고 말았다. 과거와 현재 없이 미래를 탐하는 일은 허공에 3층을 먼저 짓는 일과 같다.

 

중부경전에 보면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도 않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를 열심히 사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흘러간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오지 않은 것에 매달리지 말며, 오늘을 충실히 살라는 가르침이다. 현재, 즉 매일 되풀이되는 오늘이 흘러가 과거라는 문양을 결정짓고, 오늘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똑같은 털실로도 각기 다른 그 무엇을 짤 수 있는 것처럼, 똑같은 오늘을 살면서 어떤 색깔, 어떤 모양의 과거와 미래를 만들 것인가, 그 답이 현재를 사는 자신에게 있다.

그래, 그렇게 멈추지 않고 가면 되는 거야.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조금 느리면 어때?

포기하지만 않으면 괜찮아, 다 괜찮아.

 

후회 없는 과거가 어디 있겠는가. 실패도, 잘못도, 아픔도, 그걸 약으로 삼으면 된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경주마처럼 맹렬하게 달려 나갈 일도 아니다. 그저 오늘을 충실하게 살면 될 일. 새싹이 돋듯 매일매일 새로운 오늘이 온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흘려보낸 수많은 시간 위에 새해, 또 다른 내일이 줄지어 온다. 오늘이라는 귀한 뜨개실로 과거와 미래, 아름다운 시간을 촘촘하게 엮어갈 우리 모두를 향해 토닥토닥따뜻한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