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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지금 받고 있는 업業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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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8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07-01 신문면수 4-5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함께 읽는 종조법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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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윤금선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작가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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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07-10 13:17 조회 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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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지금 받고 있는 업業이 그것이다

제1장 교상과 사상 편

제3절 각종 논설


8. 사물의 발전 법칙


첫째, 선인과 선연이 결합하는 경우

이 경우에는 선과가 생긴다.

좋은 종자를 비옥한 땅에 심는 것과 같다.


둘째, 선인과 악연이 결합하는 경우

우세한 편에 따라 선과도 생길 수 있고 악과도 생길 수 있다.


셋째, 악인과 악연이 결합될 경우

물론 악과가 생긴다.


넷째, 악인과 선연이 결합하는 경우

우세한 편에 따라 선과도 생길 수 있고 악과도 생길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자주 하는 말이 생겼다. 누가 봐도 행운이라고 여길 만큼 대박 난 사람들을 보면 ‘전생에 복을 참 많이 지었나 보다’ 여긴다. 물론 뜻하지 않은 불행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식의 섣부른 추측이나 예단은 절대 삼간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제멋대로 전생을 갖다 붙이는 건 제2의 가해이자 폭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전생의 복으로 행운을 거머쥐었다고 지레짐작하는 것도 어쭙잖은 일이기는 하다. 거저 얻은 것처럼 보여도 당사자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는지 남들은 모른다. 어설픈 착각이기 쉽다.

부처님이 아닌 이상, 행복과 불행의 숱한 인연을 어떻게 다 꿰뚫어 볼 수 있단 말인가? 함부로 판단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다만, 전생에 지은 게 있어서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은 편하다. 부러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시샘은 거둘 수 있다. 지은 공덕으로 받은 과보라 여기니 선선히 받아들이고 축하해줄 용기도 생긴다. 그 정도 선이라면 전생의 복 운운해도 괜찮지 않을까?


전생과 현생, 그리고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인과 윤회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지금 받는 업이 그것이다. 다음 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지금 짓고 있는 행위가 다음 생의 과보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그리고 『대반열반경』에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일체중생이 현재에 사대와 시절과 토지와 사람들로 인하여 고통과 안락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일체중생이 모두 과거의 본업만으로 고통과 안락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하느니라.” 본인의 전생 업뿐만 아니라 현세에 우리가 만나고 함께 만들어가는 숱한 공업이 적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 만물이 연관되어 있다는 연기법과, 원인과 조건에 따라 결과가 따른다는 인과법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원정 대성사께서는 ‘사물의 발전 법칙’이라고 하셨으니, 세상의 이치일 뿐 아니라 이를 토대로 존재가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한 것이다.

연기와 인과를 믿는다면 착하고 바르게 살고자 마음먹는 게 당연하다. 최소한 나쁜 일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성철 스님께서는 열반에 드시면서 마지막 법문을 설하셨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나니,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뱉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오현 스님께서도 이렇게 일갈했다.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 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믿음과 공부가 깊으면 깊을수록 부끄러움이 넘치고 참회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을지 모른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을 네 종류로 설명하셨다. 어두운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 밝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

전생에 무슨 공덕을 지었나 싶게 복 많은 사람들이 있다. 부유한 환경에 훌륭한 부모를 만난 것도 모자라 머리도 좋고 재주도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하는 일마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일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가진 것에 취해 교만하고 방탕한 생활에 젖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나 돌아볼 정도로 딱한 경우도 많다. 박복하다 싶게 시련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도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 역시 적지 않다. 고난과 어려움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을 성장시키는가 하면, 부모를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화를 키우고 업을 무겁게 하는 사람도 있다.

출발이 어찌 되었든 현재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 법이다.


인과의 법칙은 우리를 숙명이나 운명으로 몰아넣지 않는다. 태어나는 순간 시작도 천차만별이듯 업을 바꿔 가는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삶의 철학과 의지와 실천이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세상에 굴림을 당하지 말고 세상을 당당하게 굴리라는 의미에서 주인공으로 살라 하고 수행하라 하는 것이다.

대혜 종고 스님은 『서장』에서 참선 수행하는 요긴한 방법으로 “익은 것은 설게 하고, 설은 것은 익게 하라.” 일렀다. 먹고 싶고, 놀고 싶고, 눕고 싶고, 갖고 싶고, 이기고 싶은 오랜 습관을 멀리해야 한다. 익숙해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욕심부리고 화내고 잘난 체하고 게으른 버릇을 떨쳐내야 한다. 그럴 시간에, 경 읽고 염불하고 기도하고 참선하고 베푸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마음 굳게 먹었다가도 금세 허물어지니 서툰 수행 습관을 늘리고 익히는 것 외에 마음공부의 정도는 없다.

좋은 인을 타고 나 좋은 연까지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순한 경계가 독이 되기도 하고 악한 경계가 복이 될 수도 있다. 전생 복은 모르겠고 지금 복은 얼마든지 키워갈 수 있으니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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