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페이지 정보

호수 308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07-01 신문면수 17면 카테고리 연재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이상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자유기고가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07-10 13:43 조회 27회

본문

연재글: 총지로 여는삶 (7회)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의태(擬熊) 1. 어떤 모양이나 동작을 본떠서 흉내 냄. 2. 동물이 자신의 몸을 보호하거나 사냥하기 위해서 모양이나 색깔이 주위와 비슷하게 되는 현상. 말벌과 흡사한 나방, 나뭇가지와 비슷한 대벌레, 해조와 비슷한 해마가 그 예이다.”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새의 배설물을 닮은 모습으로 포식자의 눈을 피하고, 난초사마귀는 꽃잎 모양으로 위장해 사냥합니다. 어떤 거미는 곤충이 걸린 것처럼 거미줄을 흔들어 다른 거미를 사냥하고, 아프가니스탄 바위틈에 사는 살모사는 거미 모양의 꼬리를 흔들어 새를 사냥한답니다. 아메리카대륙에 사는 가짜산호뱀은 그 이름처럼 산호뱀의 무늬를 모방하는데, 산호뱀은 맹독을 지니고 있어 포식자라도 함부로 덤비지 못한답니다.


꽃등에는 사나운 말벌의 모습을 흉내 내고, 어떤 벌레는 독이 있는 벌레의 무늬를 흉내 내서 포식자가 꺼리도록 합니다. 갑오징어 수컷 중에는 암컷의 무늬를 모방해 힘센 수컷이 모아놓은 암컷 무리에 들어가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놈이 있고, 문어는 주변의 자연물을 색깔뿐 아니라 질감까지 따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동물을 모방하는 식물도 있습니다. 리톱스라는 선인장은 잎 모양을 주변의 자갈처럼 만들어 초식동물을 피한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살고 있는 망치난초는 이 지역에 사는 타이니드말벌의 생리를 이용한답니다. 말벌은 땅속에 살다 꽃이 피는 계절에 맞추어 짝짓기하러 땅 위로 나오는데, 이때 암컷은 날개가 없어 수컷이 안고 꽃으로 날아가야 합니다. 암컷은 적당한 높이의 가지 끝에 앉아 페로몬으로 수컷을 부릅니다. 망치난초는 바로 이 암컷을 모방합니다. 암컷 말벌과 같은 크기와 비슷한 색깔로, 암컷이 앉은 높이에 꽃대를 올려 수컷 말벌을 유혹합니다. 꽃의 페로몬은 암컷 말벌보다 더욱 강렬하여 수컷 말벌이 이 난초에 먼저 매달리고, 이 과정에서 난초는 수분이라는 목적을 달성합니다.


남아프리카 케이프에 사는 ‘로도코마 카펜시스’, 또는 ‘케이프 레스티오’라고 불리는 볏과 식물 또한 동물을 모방한다고 합니다. 쇠똥구리는 영양의 배설물만 먹기 때문에 영양의 배설물을 찾아 땅에 묻고 거기에 알을 낳습니다. 이 식물의 열매는 영양 배설물의 모양과 생김새를 모방했는데, 냄새가 진짜보다 더 강력하다 합니다. 쇠똥구리가 씨앗을 다 묻고 나서야 영양의 배설물을 찾는다니, 이 식물들이야말로 모방의 최고 기술자라 하겠습니다.


인간의 모방 기술 또한 종류가 많습니다. 화장이나 성형으로 꾸민 얼굴, 명품을 두른 차림새, 고급 자동차, 명함과 이력서에 나열한 갖가지 직함과 학력, 경력도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역과 터미널 앞에서 소매치기당해 귀향하지 못한다고 차비와 밥값을 구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고, 초인종을 누르고 절을 짓는다며 시주를 권하거나 조상께 정성드리는 기도를 권하는 사람들도 그 실상을 알기 어렵습니다. 요즘은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모방도 더 빠르고 큰 규모로 진화한 듯합니다. 급한 일을 당했으니 돈이 필요하다는 자녀 사칭은 고전이고, 검찰과 경찰을 흉내 내거나 청첩장과 부고장에 악성코드를 심어 개인정보를 털고 은행 계좌, 비밀번호를 알아냅니다.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개설해 부채를 만들어 떠넘기거나, 일정 기간 높은 이자를 주며 투자금을 늘린 뒤 소식을 끊는 등 갖은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아직 당신이 당하지 않은 것은 당신이 영리해서가 아니라,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들릴 정도입니다.


상대를 속이려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야 성공할 수 있을 테니, 우리는 늘 사태를 겪고 나서야 뒤늦게 상황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에도 이런 감회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위직에 있을 때는 먼저 친분을 확인하고 과한 선물을 보내며 하는 일마다 칭송을 쏟아내던 사람들이 제주도 유배 후 선물은 고사하고 친분이 드러날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역만리 중국에서 사온 책과 종이를 보내온 제자에게 얼마나 뜨거웠을까 짐작합니다. 그래서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세상인심의 무쌍한 변화와 그와 더욱 대비되는 제자의 마음에 고마움을 표한 것이겠지요.


속이는 자들이 성공을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겠지만, 속는 이들은 어떤 인연으로 수고와 피해를 당하는 것일까요? 부처님의 법으로 보면 세상은 그물처럼 얽혀서 서로가 의지하며 살고, 모든 사건은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자신이 지은 대로 받고 사는 것이 한 치의 어긋남이 없습니다. 더 많은 이익을 보려다가 당했다면 이전의 악습을 멈추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이라 여기고, 정신없이 얼떨결에 당한 일이라면 이전에 내가 행한 악업의 빚을 갚은 셈 칩니다. 그러면 첫 번째 화살이야 피하지 못했더라도 뒤이어 날아드는 자책과 분노와 슬픔이라는 두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인욕과 하심으로, 온 세상을 평화와 자비 가득하게 볼 수 있는 총지종도가 되기를 서원합니다. 옴마니반메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