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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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10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09-01 신문면수 13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이상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09-16 14:22 조회 5회본문
무상 無常
남한강 꽃잎이 주는 불법의 향기
남한강 꽃잎이 주는 불법의 향기
한 달에 한 번 남한강을 돌아보고 옵니다. 생태모니터링이라는 이름으로 강변 서너 곳을 답사한 지 제법 여러 해 되었습니다.
3월에는 마른 풀잎 사이로 돋아나는 쑥, 냉이, 꽃다지 등 온갖 새싹이 보이고, 4월이 되면 버드나무, 제비꽃, 냉이, 꽃다지 등 부지런한 꽃이 피고, 5월에는 고들빼기, 씀바귀, 갈퀴나물, 꽃마리와 사초들이 푸른 잎 위나 사이로 피어납니다. 6월에는 족제비싸리, 지칭개, 소루쟁이, 뱀차즈기(곰보배추)가, 7월에는 칡, 메꽃, 기생초, 금계국이, 8월에는 두릅, 자귀풀, 망초, 익모초와 달맞이 등 훤칠한 키의 꽃대가 솟아올라 여러 송이의 꽃을 피워냅니다. 9월이면 갈대와 억새도 이삭을 틔우고, 돌콩과 새팥, 왕고들빼기와 쑥, 여뀌도 꽃 피울 것입니다.
키 작은 식물은 작은 대로, 키 큰 식물은 큰 대로, 부지런한 식물은 부지런하게, 여유로운 식물은 여유롭게, 어떤 식물은 잠깐, 또 어떤 식물은 오랫동안, 자기에게 알맞은 햇빛과 온도와 바람과 비와 흙에 맞춰 각자의 리듬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주변과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사실은 얼음이 녹고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항상 푸른 잎과 온갖 꽃이 번갈아 보이는 풍요로운 세계입니다.
같은 장소를 몇 년째 가다 보니 같은 계절, 같은 장소인데도 어떤 해에는 박주가리가, 또 어떤 해에는 미국쑥부쟁이가, 또 어떤 해에는 가시박이, 또 다른 해에는 개망초가 여기저기 눈에 띄게 번성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강수량이나 온도의 차이가 어떤 식물에 더 유리하게 작용했든지, 아니면 자기들끼리 우리가 모르는 자기들의 언어로, 순서를 정해서 나름대로 기회를 주고받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더스 강변에 온갖 신을 섬기며 복을 빌고 살던 사람들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며 서로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존재일 뿐 영원한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최고의 진리를 깨달아 선포하신 위대한 성인이 출현하시고, 또 그 법이 한때는 상좌부로, 또 한때는 대승으로 세상에 유통되고, 500년 뒤에는 중국 땅으로 옮겨가서 선불교가 되고, 티베트고원에서는 밀교가 되고, 한반도에 와서는 호국불교가 되어 번성하다가, 인도는 인도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다시 원래 삶의 모습으로 익숙하게 되돌아가는 것도, 햇빛과 온도와 물과 땅에 따른 당연한 변화의 리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한국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워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태어나는 사람마다 얼굴은 준수하고 키는 훤칠하며 몸매는 단정하여 노래하고 춤추는 젊은이들을 세상의 모든 사람이 따라 합니다. 최근에 유행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라는 애니메이션은 케이팝이라는 이름과 우리말 몇 구절 들어간 노래만으로 세계인의 관심과 인기를 얻고, 까치호랑이와 갓을 인쇄한 캐릭터 상품(소위 굿즈)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국립중앙박물관 앞을 가득 메웠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 흥행의 혜택을 미국과 일본의 기획사와 제작사가 다 차지하고 있다는데, 세계인의 관심 분야를 포착하고 적당한 이야기와 적절한 인물을 설정하여 노래와 춤으로 꾸며낸 아이디어 제공자가 그들이기 때문이겠지요. 케이팝인데, 우리 문화의 산물인데, 왜 우리는 소비자로만 남고, 기획과 생산의 주체는 미국과 일본의 투자자들인지, 만약 우리가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관심사를 가지고 기획하고 생산하는 주체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모든 것이 무상하여 끝없이 변화하는 중에, 우리는 무엇을 집착하여 자유를 얻지 못하고, 세상 사람이 모두 부러워하는 나라에 살면서 세상 누구보다 불안해하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을 한탄하는지 깊이 관찰하여, 모든 장애를 바로 뛰어넘어 활력과 희망을 되찾는 총지종도가 되기를 서원합니다. 옴마니반메훔.
<사진> 출처: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 풍경, 공공누리사이트 https://www.kog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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