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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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실천공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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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8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4-08-02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총지논단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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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5 10:27 조회 1,3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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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공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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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종조 원정 대성사께서 서적간행을 위해 친히 쓰셨던 원고의 일부입니다. 원정 대성사께서 창종의 뜻을 구국도생에 두셨던 만큼 구구절절 일체중생제도의 대비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한국밀교의 중흥을 창종 정신으로 삼았던 종조 원정 대성사께서는 정통밀교종단의 교상과 사상의 체계와 정립에 전념하셨습니다. 

특히 한때 진각종단의 총인직을 맡으셨을 때는 모든 교리체계와 교전편찬을 손수 완성하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면면은 원정 대성사의 유고에서 엿보게 됩니다. '삼인진리', '진각' 등의 언급은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총지종과 진각종의 교전을 아우르고 있는 종조 원정 대성사의 가르침에서 대성사의 숨결을 다시 한번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구병 

차라리 죽는 것만 같지 못한 문둥병 같은 불쌍한 사람을 볼 때에는 반드시 죄과라고 생각하고 몸살같은 적은 것은 과로하여 왔다하며 감기 같은 것은 바람 쇠여 왔다하고 죄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큰 것은 죄과나고 적은 것 은 죄과 나지 않는가? 중하고 경한 것만 다를지언정 크거나 적거나 원인은 다 죄로 인연한 것이다.

불을 배반한 오백년 동안에 민족의 각성이 어두어서 죄지어서 병들고 약 먹어서 병 낫는 것 밖에 모르니 이것이 진실로 사에 기우러진 것이 아닌가.

기일을 정해서 심공하는 중간에 새로 병이 나거나 혹 병이 더할지라도 허물을 뉘누치고 약을 쓰지 않는 것은 심마를 물리치고 심인을 깨치는데 한 시련이 될 것이며 또 정기 심공 중에 진리의 심공법을 세우기 위해서 약 쓸 때를 잃고 늦었다고 하더라도 속히 나을 병이 오래 가는 일은 진각님 법계 안에 그와 같은 진리가 없는 것이며 또 우리 신교도로서 천만번 이나 실험하여 온 결과도 실패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은 몰라도 병이 다 되어서 죽을 병이 들린 사람에게 약을 써서 낫는 것도 아니요 이와 반대로 아직 병이 남이 있는 사람이 병들어서 의원을 구하여 약 쓰지 않았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 병은 의원에도 약에도 있지 않는지라.

오안이 열려서 중생을 볼진대 세상 사람의 의원은 응급적 임시로 치료하는 법에 불과 하므로 근본적으 로 다스리지 않고 순만치는 것이 되어서 위장병을 고쳐 놓으면 폐에 병이 나고 심장 병을 고쳐 놓으면 신장에 병이 나고 귀 에 병을 고쳐 놓으면 눈에 병이 나고 코에 병을 고쳐 놓으면 입에 병이 나며 유유상종이라 같은 인연으로 쫓아와서 한 가족으로 살게된 남편의 병을 고치게 되면 얼마 안되어서 부인에게 병이 나고 아버지의 병을 고치게 되면 자식에게 옮겨나서 병으로 이어가게 되니 가족 일생에 병으로 윤회하는 고통을 멸 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불보살은 병의 근본을 다스리게 되므로 영원토록 윤회가 끊어지고 고 통을 해탈케 되느니라.

현재 우리나라 사람은 무슨 병을 가졌기에 가정병원을 차려두고 여러 가지 좋은 약을 준비해서 있는 이가 십중팔구. 이와같이 약을 가지고 반의원이 되어서도 고치지 못할 병이 우리민족 만큼많은 나라가 없을 것이다. 이것을 쉽게 말하자면 위생과 의료기관이 발달되지 않는 까닭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육체병을 고치는 좋은 의원이 없다는 것 보다도 정신병을 고치는 의원인 불보살의 법약을 먹지 못하였던 까닭이다.'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의료기관 시 설이 많은 도시에서는 병이 적을 것이어 늘 도리어 정신병과 내부병과 기타 해부 할 병이 많은 것을 보고 알 것이라.

변하는 것은 미래의 복이 주가 되고 행하는 것은 현재의 복이 주가 된다.

그러나 현재와 미래가 다 염하고 행 하는 것이 서로 관련되어 있느니라. 염불 인연한 공덕은 미래의 복이 되므로 시대에 맞지 않는 관을 쓰고 도포를 입더라도 나의 의범과 행사하는 그 시대 에 이르러서 복을 받게 되려니와 육행 을 실천한 결과는 현재에 복이 되므로 현대의 의범과 행사로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현재에 행복으로 실게 되나니라. 죄는 네 가지의 그릇된 것이니 곧 지수 화풍이 네 가지 현실에 그릇된 것이 죄가 된다.

사람 죽이고 도적질 하는 것은 다 죄 인줄 생각하고 또 행해서는 안된다는 것 도 알되 봉건시대는 가고 자유시대는 왔는데도 불구하고 봉건 조상으로부터 행여 오던 적은 중도를 습관적으로 행하 는 것도 죄요 양을 쓰는 시대에 음을 쓰는 것도 죄요 국가 사회를 위해서 희사할 시대에 자기의 몸과 가정만 알고 절약하여 인색한 것도 죄요 물심이원을 세우는 시대에 물질문명을 열게 되는 과학 교육은 배울줄 알고 정신문화를 열게 되고는 종교는 자유로 진각님을 믿고 심인을 깨칠 줄 모르는 것도 죄요 지혜를 밝혀 서 옳은 것을 쓰는 것도 죄가 되나니 그러므로 법계와 인간에서도 그 시대를 알아 응해서 어기지 않거늘 어찌 내가 살고 았는 시대주의와 행사에 서로 반대가 되고 현세 복이 어데서 오리요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람은 지금 과도기에 있어서 사람과 행사가 자연 시대와 어긋남 이 많은 까닭으로 의술로서 고치지 못할 온갖 병이 많은 것이다.

선한 마음에는 선심이 따르게 되나니 선심은 길문을 열어오고 악한 마음에는 악마가 따르지 되나니 악마는 병마를 불러오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 좋은 균이 없으며 어느 곳에 나쁜 균이 없으리요 마는 마음에 벌써 별될만치 감정되어 있는 사람은 운으로서나 기로서나 물로서 병균을 쉽게 받고 양심적으로 본 성품이 밝고 기와 정이 흐리지 않는 사람은 운으로서 나기로서나 물로서 병균을 쉽게 받지 아니하는 예를 들게 되면 눈바람에 찬길을 같이오고 이슬을 맞고 한데 잠을 같이 자는 데도 불구하고 필정에 상해서 마음병을 내어 있는 사람에게 병마가 쉽게 침노하나니 그러므로 깨끗한 심장데 병마가 침노하지 못하거늘 어찌 칠정에 기우러진 사람을 교화선도 하는데 악 마로 따르던 병마가 물러가지 않겠느냐.

세상사람은 다 이 이치를 모르는 까닭으로 찬 바람에 상해서 병이 낫다하고 이슬에 상해서 병난 줄만 알게 되나니 악한 세상에 미진 같이 일어나는 모든 병은 불보살보다 더 좋은 양의 될 자가없느니라.

그러므로 신라 고려의 불교문화가 발 달하였을때 어떠한 의료기관이 발달되었 던가 한번 생각하여 볼때 동의도 아니요 서의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불보살의 광명지혜 안에 진리 법 약으로서 병이 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간 있는 병은 백병통치하는 병의가 있어서 무난하게 치료하였을 것이라. 이러한 것이 보살정토이며 극락세계이며 불교문화인 것이다.

바람에도 병이 나고 더위에도 병이 나고 습기에도 병이 나고 마물로 감상되어서 나는 병이라 천지의 기와 음과 물과 균으로써 나는 병이니 물과 균으로써 나는 병은 물로써 고치게 되므로 곧 약으로써 능히 치료하게 되느니라.

슬픈 데도 병이 나고 성내는 데도 병이 나고 두려운 데도 병이 나고 미원하는 데도 병이 나고 욕심에도 병이 나나니 이것은 내심으로 감상되어서 나는 병 이라 사람의 심성 곧 자기마음으로서 내는 병이니 자기 마음으로서 낸 병은 자기 마음으로서 고치게 되므로 곧 심인진 리를 깨쳐서 능히 병고를 해탈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람의 물심으로 나는 두 병을 나누어 보면 외물로서 난 병은 약으로써 쉽게 고치고 내심으로 나는 병은 성품이 어두어서 고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으니라.

〈자료제공 : 종학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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