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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닦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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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9-05-20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지상설법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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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2 19:09 조회 2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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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닦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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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사 주교 해산 대정사

불교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이라고 말할 수 도 있을 것이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 가르침’ 또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표현이라도, ‘내가 닦고자 하는 마음’ 이 없고서는 어떤 가르침, 어떤 수행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화엄경에서 일체유심 조라 하였듯이 일체의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내 마음에서 짓는 것이요, 싫어 하는 마음도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 이지 내 마음 밖에서 일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어제는 좋았다가 오늘은 원 수되고, 또 마냥 좋았던 사람이 공연히 미워지는 것도 다 내 마음의 작용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결국 불교는 인간 의 마음에 대한 종교이며. 부처의 위대한 지덕을 지니면 인간의 마음도 그렇게 위대한 것이며, 중생에게 엄청난 사 악함이 있다면 그 인간의 마음 또한 그렇게 사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모든 법의 근본은 실로 마음 이니. 이 마음을 바로 알고 닦지 않으 면 안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 지 않고서는 제대로 수행을 했다 할 수 없고. 아무리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 바르고 뛰어나다 할지라도 한낱 공염 불에 불과하며 무용지물과도 같은 것 입니다. 옛말에 ‘구슬도 꿰어야 보배' 라고 했습니다. 마음 닦는 일에 정진하 지 않으면 그 어떤 깨달음도 구하는바도 이루지 못할 것이며, 수행한다고 야 단법석이라도 그것은 진정한 수행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을 닦아야 할까 요? 마음의 본성. 그 체성을 바로 알았을 때, 우리는 제대로 된 마음, 올바른 마음을 낼 수가 있는 것이며, 이것이 반복적으로 행해졌을 때 우리는 지속 적으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갈 수가 있 는 것입니다. 마음을 닦고 마음을 다스 리는 일이 어떻게 하루 하다 말 일이 겠습니까. 쉬임없이 정진하고 또 정진 해나가야할 수행공부인 것입니다.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하루에 도 수십번 바뀌는 이 마음은 도대체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요. 마음은 미묘하여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한 하며, 때에 따라 선의에 결합하 여 선업을 짓기도 하고, 악의에 결합하여 악업을 짓기도 합니다. 번뇌를 일으킬 수도 있고 멸할 수도 있으며, 번뇌를 일으켜 생사에 헤 매고 번뇌를 멸하여 열반에 안주하기 도 하는 등 그 마음 자체가 중생심 그 대로이기 때문에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것이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더러운 까닭에 중생이 더럽고. 마음이 깨끗한 까닭에 중생이 깨끗하다. 마치 화가가 하얀 바탕에 여러 가지 채색으로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듯이, 마음도 오온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생사에 묶이고 오온 에 대한 여실지로 해탈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마음은 깨달음을 못열어 어두운 중생으로 만든가 하면. 깨달음을 열어 위대한 부처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화엄경은 “중생과 마음과 부처의 셋은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행자들은 마음을 닦아 성불에 이르는 길을 제대로 알아야 하며, 또 아는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바로 행하는데에 모든 노력을 다 해야할 것입니다.

그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한가지 예를 든다면은 우리가 설법시간때 마다 듣는 ‘팔정도’ ‘육바라밀’ 을 들 수 있습니다. 팔정도 육바라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줄 압니다.

‘옴마니반메훔’ 을 염송할 때만, ‘팔 정도’ ‘육바라밀’의 보살도를 떠올릴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화나게 했을 때 하심할 줄 알고. 남의 좋은 일에 수 희 하는 마음을 갖는 것과 같이 매일 부딪치는 생활 가운데서 내 마음을 조복하고 다스리는 것이 마음수행의 첫걸음인 것이며. 바로 이것이 궁극에는 성불로 향해가는 길인 것입니다. 오늘부터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점검토록 합시다. 진언염송을 통해서 행해나간다면 . 더더욱 금상첨화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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