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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의 도(道 ) 성인의 속(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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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9-05-20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현묵의 세상읽기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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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3 05:14 조회 3,50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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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의 도(道 ) 성인의 속(俗 )

장자의 거협편에 나오는 얘기다.

장자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도둑의 상징적 인물인 도척에게 그 일당이 질문하였다.

“도둑에도 도가 있습니까?”

“어디를 간들 도가 없겠는가? 대 저 방안에 감추어 둔 것을 미루어 아는 것은 성이고, 앞장서서 들어가는 것은 용이며, 맨나중에 나오는 것은 의)고, 가부를 아는 것은 지며, 고르게 나 누는 것은 인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못하고서 큰 도둑이 된 자는 천하에 없다.

말하자면 어느 집 어느 구석에 제  법 시세가 나가는 재물이 있다는 것 을, 잘 발달한 후각으로 짚어낼 정도면 성인의 경지에 오른 셈이다. 재물을 훔치는데 두려움이 없으면 용사라 할 수 있고 일당을 모두 안 전하게 대피 시킨 후에야 자신이 그 집에서 나서는 의리를 갖추어야 진 정한 도적이며 또한 어느 집은 털어 도 되고. 어느 집은 그냥 지나칠 줄 알아야 도적으로서의 보신을 하게 되며 훔친 재물을 적당히 나누고 베 풀 줄 아는 품성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큰 도둑, 즉 대도가 된다는 말씀이다. 그참 도둑의 도라는 것도 도이다 보니 어렵긴 매일 반인가 보다.

80년대 초반 재벌과 고관의 집을 털었다가,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꽤심죄’로 죄값의 배 이상 감옥에서 일생을 보냈던 조세형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를 일컬어 대도라고 하였는데 그가 바로 장자가 말한 ‘도둑의 도를 이룬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의 신출귀몰한 실력이나 대범성 등등은 거의 도둑 의 도에 가까이 갔다고는 할 수 있 겠다. 그가 얼마전 형기를 모두 채우고 출소하였는데 최근 한 방범회 사는 그의 경력을 높히사 특별채용 했다는, 참으로 신기한 경우까지 연줄하였으니 웃고 넘기기에는 세상일이 만만치 않다.

나라가 어수선하고보니 대도의 출현도 잦아진다. 얼마전 세간의 화제 가 된 ‘고관집털이범’ 의 경우가 그 렇다. 현직 대통령의 후보 시절과 당선 직후 국제금융계와의 연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실력자의 집, 현직 경찰서장집 등 꽤나 잘나 가는 집만 털었는데 그 액수가 엄 청나다. 그 피해액을 두고 어찌된 영문이지 도둑이 밝힌 절도액수나 물건의 종류에 대해 정작 피해자들 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펄쩍 뛰고 있어 과연 누가 진실이고 누가 속이고 있는지 두고두고 관심거리가 될 것이다. 이런 경우 가해자의 고백보다 피해자의 '오리발이 더 영향 력이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니 사 실이 곧이 곧대로 밝혀지기보다는 그냥 ‘야사’ 로 남게 된다. 대도 조 세형씨의 경우도 그랬으니까. 일단 사실의 진위는 차치하고, 도둑이 밝 힌바에 따르면. 고관집에서 돈을 숨 기는 방법이 꽤나 재미 있다. 도자기 속에서 거액이 나왔는가 하면, 김치냉장고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달러를 숨겨 놓고 있었다. 그래야 돈 이 썩질 않을테니 그러했겠지만 우리 같이 한두푼에 벌벌 떠는 사람들 에겐 정말 꿈이라도 좋으니 한번만 이라도 그래봤으면 좋겠다는 부러움 을 숨길 수 없다. 하긴, 사과상자 속 에 몇 억원의 현찰을 넣어 정치비자 금으로 주고 받는 사람들 정도쯤 되 는 부류에서야 웃기는 얘기에 그칠 지 모르겠지만….

그네들이 그 돈을 안전한 은행에 두질 않고 집안의 모처에 숨기고 있 다는 것은 그만큼 돈의 성격이 좋 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는 성인 군자입네 하면서도 뒤로는 구 린데가 있으니 떳떳하게 밝은 장소에 숨기지 못하고, 또 생돈을 잃고 도 ‘나는 잃어버린 사실이 없다’고 딱 잡아뗄만큼 축재하는 과정이 더 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인의 경 지에 이른 도둑보다 성인의 행세를 했던 그들의 속됨이 더 못된 것임에 누가 이견을 달겠는가?

장자는 역설적인 비유를 들어 이 렇게 일갈하였다. ‘성인이 죽지 않 으면 큰 도둑도 죽지 않을 것이니 비록 성인이 거듭 나타뎌서 천하를 다스린다면 이는 도척을 거듭 이롭 게 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저 갈구리를 훔쳐간 자는 죽음을 당하고 나라를 도둑질한 자는 제후 가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사회에 위선적인 성인 이 많기보다는 솔직한 도둑이 많아야 나라꼴이 제대로 될 것이다. 막 말로 ‘귀신은 뭘 잡아먹고 사는지’ 세상에 성인으로 위장한 도둑이 들 끓고 큰 도둑이 사람들을 후련하게 만드니 이런 사판에 승속의 경계를 의심케 된다. 정말 언제쯤에야 진짜 성인이 세인의 등불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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