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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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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3-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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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정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시인 김정수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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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2 02:21 조회 4,1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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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함박눈이 내리던 날 저녁에 지인들을 만났다. 평소 자주 만나는 사람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분야는 조금씩 다르지만, 다들 ‘예술’하는 사람들인지라 대화는 자연스럽게 문학·음악·미술 사이를 넘나들었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미술관에 들러 그림을 감상한다는 화가는 고흐와 칸딘스키의 작품에 대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보컬트레이너의 경험과 발성법에 대해 들려주었다.

대화가 무르익을 때쯤 화가가 물었다. “요즘은 그림보다 시집을 더 많이 읽는데, 어렵더라고요. 시집을 반복해서 읽어도 이해는커녕 해석조차 잘 안 되더라고요. 어찌하면 시를 잘 읽을 수 있나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옆에 앉은 작가가 끼어들었다. “시는 그냥 느끼면 되는 거야. 내가 시창작 강의 좀 들어봤는데 다 소용없더라.” 서너 곳에서 시창작 강의를 하다가 최근에 다 접은 내 입장에선 곤혹스러웠다. 애써 표정을 감추며 화가에게 말했다. “먼저 시라는 장르의 특성을 알아야…” 그때 또 다른 사람이 내 말의 허리를 잘랐다. “시는 독자와의 소통이 중요하지. 지들도 모르는 시를 왜써.” 난 입을 닫고 말았다.

선사틱낫한은 말했다.

“상대방의 틀린 말을 바로 잡기 위해 그 말을 중단시키면 그 순간 경청은 논쟁이 되어버립니다. 경청이란 상대방이 마음을 다 털어놓고 번민에서 가벼워질 수 있도록 하는 수련입니다.”

꼭 수련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어야 한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세 더 우선이다. ‘왜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두 개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한다. 경청은 소통의 첫 단계다.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말과 감정에는 여러 의미와 관계가 내포되어 있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지극히 인격적인 방식이다. 인격을 존중해줘야 관계의 거리가 좁혀진다. 특히 자랑이 아닌 하소연은 아픈 내면에 재를 뿌리는 것이다. 감정뿐 아니라 영혼까지 상처를 받는다.

논쟁 대신 함묵하며 창밖에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았다. 그때 다시 화가가 물었다. “예전에 왜 나한테 힘들다고 구구절절 털어놨어요. 그리 친할 때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그가 다시 끼어들었다. “다른 사람의 가슴에 박힌 대못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프다잖아. 그런 거겠지.” 느닷없는 실직에 참으로 막막하던 때였다. 어디를 갈 때 차비도, 회비도 아까울 만큼 경제사정이 안 좋을 때였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아니라 한 가정이 길거리에 나앉을 만큼 절박한 시기였다. 그런 마음이 다시 길거리에 나앉는 순간이었다.

내 말을 들어줄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벼랑 끝까지 밀려나 술의 힘을 빌려 겨우 털어놓은 속마음이 입방아에 오르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감춰야 할 것과 감춰줘야 할 것이 있다. 감싸줘야 할 것도 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일 게다.

반성한다. 나도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 아니다. 상대의 말을 듣다가 슬쩍 말을 돌리거나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난 말이야” 하면서 내 손톱 밑의 가시를 들이밀기도 했다. 때론 취조하듯 상대를 몰아붙이며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기도 했다. 웃음을 유발한다며 말장난으로 상대를 골리기도 했다. 막상 겪어보니 내가 얼마나 남의 이야기를 외면했는지 알겠다. 역지사지하는 마음, 겪어보고서야 깨닫는…. 내 안의 상처와 고통은 결국나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자업자득인게다.

틱낫한은 또 말했다.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고통을 사랑스럽게 보살펴야 합니다. 마치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주듯이 말입니다. 나는 숨을 들이쉬면서 나의 아픔을 느낍니다. 나는 숨을 내쉬면서 나의 아픔에 미소를 짓습니다.”


시인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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