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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종자와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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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8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7-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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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7-09 14:40 조회 3,68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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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종자와 인식
심뽀이야기9

행복과 불행은 인간 행위(Karma)에 의해 좌우

마음 변화를 주도하는 수행으로 깨달음 향해야


‘업’은 인과성과 윤리성이 바탕


불교에서는 타 종교에서 주장하는 신(神)에 대한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 타 종교에서는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근원이 신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해석하지만, 불교에서는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가 인간의 행위(Karma)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하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행위를 업이라 하는데 이 말은 범어 Karman을 번역한 것이다. 


Karman은 ̒완수하다, 만들다, 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Kr̓가 그 어원으로, ̒활동, 일, 행위̓ 등으로 번역한다. 불교경전에서는 일반적으로 ̒업̓이라 쓴다. 


업 이론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라는 ‘인과(因果)의 법칙’ 위에 성립된다. 그러고 윤리성에 기초한 선(善)한 행위와 악(惡)한 행위라는 ‘윤리적인 법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업 이론은 인과성과 윤리성의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업은 마치 향을 태울 때 향이 다 타서 사라진 뒤에도 향기가 옷에 배어들어 남게 되는 것과 같이 반드시 어떤 흔적이나 세력을 남긴다. 

업이 남긴 이 세력을 업력(業力)이라 하는데, 이것은 잠재적인 에너지로 되어서 존재 속에 머물러 있다가 기회가 오면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업력은 존재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들로 하여금 살아가게 하는 동력(動力)으로 작용하고, 죽은 뒤에는 그들의 미래를 만드는 에너지가 된다. 


현재 ‘업’, 미래를 결정하는 재료


업은 이 생(生)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생을 통해서 틀림없이 그 결과를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업은 존재의 현재 운명뿐만 아니라 미래의 운명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재 짓고 있는 업은 그 존재의 미래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재료가 된다.

인간의 행위를 업이라고 했지만 모든 행위가 업은 아니다. 업이 되기 위해서는 과보(果報)를 초래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행위여야 한다. 그렇지 못한 행위는 업이 될 수 없다. 


과보를 초래할 수 있는 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의도적인 행위여야 한다. 

둘째, 윤리적인 행위여야 한다. 즉 선한 행위이거나 악한 행위여야 한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행위, 즉 무기업은 중성적인 업으로서 무정란(無精卵)과 같은 것이다.  

유식에서는 전5식은 근본식인 제8식에 의지하여 유지되므로 전5식이 인식하는 바탕에는 제8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한다. 전5식은 제8식에 저장된 종자의 업력에 따라 작용을 한다. 이것은 종자의 업력이 먼저 움직이고 이어서 업력에 따라 대상을 선택하고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어떤 대상이 우리들의 전5식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우리들은 대상이 먼저 있어서 전5식이 인식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종자의 업력이 먼저 움직이고, 전5식이 따라간다. 

다만 종자의 업력이 워낙 미세하고 은근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우리들이 어떤 대상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대상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전5식이 상대하는 대상은 물질이기에 물질은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활동력을 지니지 못한다. 마음만이 물질을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왜 이 대상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가라는 마음의 문제이다. 

인간의 전인적인 행위를 삼업(三業)


우리가 대상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 대상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이 많은 대상 중에서 특정한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이미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그 대상을 향하려고 하는 행위의 가능성이 업력종자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8식에 일정한 업력 종자가 있다고 할지라도 대상을 만나지 못하면 전5식은 인식작용을 할 수가 없다. 

전5식은 대상이 있어야만 인식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업력 종자가 대상이라는 인연을 만나게 되면, 비로소 전5식을 움직여 인식작용을 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보통 인간의 전인적인 행위를 삼업(三業)이라 하고, 몸의 행위인 신업(身業)과 입의 행위인 구업(口業)과 뜻의 행위인 의업(意業)으로 나누고 이 중에서 신업과 구업을 사이업(思已業)이라 하고 의업을 사업(思業)이라 한다. 

사이업(思已業)인 신업과 구업은 사업(思業) 즉 생각이 일어난 이후에 일어난다는 점에서 붙인 이름이다. 즉 의업이 먼저 일어나고 신업과 구업이 따라 일어난다는 뜻이다. 

결국 마음으로 먼저 생각을 한 이후에 몸과 입의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으로 마음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마음에 의해서 인간의 행위는 결정되며, 행복과 불행이 좌우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어떤 종교보다도 마음의 변화를 주도하는 수행으로 자신의 행위를 수정하여 행복을 얻고자 한다. 

착한 마음에서 행복이 올 수 있으며, 나아가 마음의 궁극적인 변화를 통해서 결국 중생에서 깨달음의 부처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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