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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글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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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8-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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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정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시인 김정수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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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8-05 13:20 조회 2,6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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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글이 고맙다

“이건 정말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거야.”

무언가 심각한 것을 놓친 게 분명했다. 책임교정을 보는 나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뭔데요.”

출판사 대표는 1차 대장을 펼쳐 손가락으로 찍어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소나무에 대한 설명인데 “질경이는~”로 시작하고 있었다. 형식이 반복되다 보니 필자가 앞의 내용을 복사해 쓰면서 실수를 한 것이다. 

아무리 필자가 실수했더라도 편집자가 당연히 잡아야 할 내용이었다. 원고 상태에서 2번을 보고, 편집 디자인 후 1차 교정을 봤는데도 놓친 것이다. 

그 후 필자에게 PDF 파일을 보내 확인까지 했지만, 필자 역시 놓쳤다. 그것을 대표가 발견하고는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한 것이다. 

“책이 나오기 전이라 다행이네요.”

겨우 변명 비슷하게 한마디 했다. 이상하게 그런 건 책 발간 후 눈에 잘 띈다. 그러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2년의 프로젝트가 다 ‘꽝’이다. 고생한 것은 다 묻히고 잘못한 것만 부각된다. 뒷수습도 난감하다. 제작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요즘 한 출판사에서 사전 만드는 일과 주간잡지사에 객원으로 교열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단행본, 잡지, 백서 등 많은 인쇄물을 만들었지만, 주간지 교열과 사전 제작은 처음이다. 

주간지는 회사의 규정에 따라야 하지만 사전은 다른 인쇄물보다 원칙에 더 충실해야 한다. 

특히 띄어쓰기 적용에서 허용이 아닌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분야별 필자들에게 보내는 원고청탁서에 통일된 양식의 순서와 내용, 문장부호 등의 규정을 명기했지만, 보내온 원고는 편집자의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원고 상태에서 2차까지 보면서 ‘하였다’를 ‘했다’로, ‘되었다’를 ‘됐다’로 서술어를 통일시키고, 숫자와 한자, 영문 표기를 통일시켰다. 

가장 어려운 것은 명사와 명사의 띄어쓰기다. 

예를 들어 어로 기구, 어로 활동, 어로 작업, 어로 시기, 어로 방법 등이 있다면 필자마다 붙이고 띄어 쓴다. 심지어 어떤 필자는 같은 원고에서 어디는 띄어 쓰고, 어디는 붙여쓰기도 한다.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사람들이 많이 틀리는 것은 주어와 서술어 관계다. 가령 “원양어업은 우리나라의 배타적 경제수역 이원의 공해 및 연안국의 EEZ에서 행해지는 어업”이라는 문장을 보자. 

이 문장은 주어가 ‘원양어업은’이므로 서술어는 ‘행해진다’가 돼야 한다. 긴 문장일수록 이런 비문이 많다. ‘뱃속의 태아’로 시작하는 글도 있었다. 태아는 “모체의 태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이므로 그냥 ‘태아’로 써야 한다. 불필요하게 들어간 ‘뱃속’도 ‘배 속’으로 표기해야 한다. 

몇 년 전, 사실을 바탕으로 쓴 「윤문」이라는 시에서 “선인세 몇억은 기본이라는 저자의 글을 고치다 보면 도대체 글을 쓴다는 사람이,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글쟁이가 이것밖에 못 써, 사정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싶다가도 이걸로 우리 가족이 먹고살지, 노모의 병원비를 대지, 생각에 이르면 남의 글이 고맙다”고 했다. 

시를 발표하고 사람들이 물었다. “그 시 내용이 사실이냐?”고, “그가 누구냐?”고. 그걸 어찌 밝히겠는가. 그저 배시시 웃어 줄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새빨갛게 고쳤다.

편집자가 가장 두려운 날은 인쇄물이 나오는 날이다. 칭찬은 언감생심이고, 조용히 지나가면 그나마 선방한 것이다. 전화라도 걸려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전화를 받기 전부터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사고는 늘 날 수 있지만, 뒷수습이 중요하다. 말은 오해를 낳는다. 직접 만나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 

책 만드는 일은 참 어렵다. 우리말은 더 어렵다.

시인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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