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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분쟁의 시대, 밀교야말로 반드시 필요한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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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9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12-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기획연재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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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12-14 15:28 조회 2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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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종조 원정 대성사 일대기 (26회)

한국불교 분쟁의 시대, 밀교야말로 반드시 필요한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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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대 진각종 스승들과 함께 


진각종은 초기의 어려움을 딛고 안팎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교세도 뻗어 나가고 있었다. 당시 불교계는 비구와 대처의 대립으로 극심한 혼란과 분란을 겪고 있던 때였다. 정화와 왜색 탈피를 내세우면서 시작된 일이지만 대중들에게는 절 뺏기와 폭력 사태가 두드러져 불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전해졌다.

 

그 첫 출발은 불교 내부의 고민과 수행의 결과가 아니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외국 손님과 함께 서울 정릉 절에 방문했는데, 사찰에 널린 기저귀와 속가의 옷, 그리고 일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한 일제 잔재의 글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대처는 일제의 잔재이니 사찰에서 몰아내라”고 지시한 일이 있었다. 이에 당시 소수였던 비구승들이 권력의 지지를 받고 대처 측과 사찰 분배를 두고 협의했으나 대처승들의 거절로 걷잡을 수 없는 분쟁으로 번지게 된다. 종교의 정화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가르침은 때때로 시대에 따라 왜곡되고 변질될 수 있으며 그 안에 몸담은 이들이 반드시 청정하지 않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종교개혁과 새로운 교단의 출현은 그런 정화의 노력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실천과 방법의 모색이 종교적인 길을 벗어날 때 진리를 더럽히는 거짓과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경찰과 군대까지 동원된 대처승 몰아내기가 전국 사찰에서 벌어졌다. 대처 측도 타협과 관용을 외면하고 절 지키기에만 몰입했다. 그러나 공권력을 등에 업은 상대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 시대의 추세였다. 


당시 소수였던 비구승들은 세 불리기를 위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세력을 넓혔다. 수행과 계율의 청정은 뒷전의 일이 됐다. 무조건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서, 출신을 가리지 않고 자기편 만들기에 나섰다. 이후 한국불교 분쟁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폭력 사태는 이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대성사는 이 비극적인 사태를 냉철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불교의 제 1교리가 다름 아닌 불살계(不殺戒), 즉 그 어떤 생명이거나 심지어 자신의 마음에서마저 폭력을 일으키지 말라는 비폭력이 행동의 필수적인 규범이며, 수행자는 사생의 자부로서 일체를 자비로 대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정화를 명목으로 곳곳에서 폭력이 춤추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것은 헌 옷을 누가 빼앗아 입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시대정신에 맞게 가르침과 신행으로 세상에 본을 보일 모범이 필요했다. 수단이 잘못되면 목적 또한 왜곡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당시의 현실은 밀교야말로 새 시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르침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자비 교단이라는 불교에서 무자비한 일들이 줄을 잇고, 심지어 수행자의 폭력과 자해행위가 호법의 가면을 쓰고 벌어졌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세상은 불교 교단의 정화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절 뺏기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부처님 가사 장삼을 입고 폭력이 벌어지는 일은 시대의 비극이다. 


불교를 보는 세상의 시선은 냉소로 변해가고 있었다. 수행자를 폭력을 앞세우는 이들로 보고, 불법은 잿밥 차지하기로 보는 차가운 눈길이 몰려왔다. 그와는 확실히 다른 가르침을 세상에 전해야 할 사명이 커졌다. 이전과 다른 불교가 여기에 있었다. 누구나 생활이 수행이 되고 생활을 통해 진리가 드러나는 가르침이 있다는 소식은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대립이 아니라 조화이며, 폭력이 아니라 안과 밖의 평화가 있는 가르침을 밀교를 통해 드러낸 것은 대성사의 한결같은 신념의 결과였다.


대성사는 대소승과 다양한 종파, 복잡한 수행의 단계에서 왜 밀교가 가장 높고 궁극적인 가르침인지를 이렇게 밝혔다. 


“밀교는 최상승(最上承) 또는 금강승(金剛乘)이다. 완전히 조화를 이룬 세계의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실현이다. 본능에만 따르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동물적인 생활이나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생활에서부터 윤리와 도덕을 배우고 행동하는 단계를 거쳐 인간의 의식과 자연현상을 되짚어 절대 조화에 도달하는 것이 밀교이다. 그러므로 밀교에는 가장 낮은 욕망과 가장 높고 거룩한 이상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뒤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가진 곳에 있으면서 전체가 일대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마치 악기로 치면 대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 낱낱이 따져 들으면 잡음이나 조화롭지 못한 소리가 들려도 일체가 오케스트라의 요소인 것이다.”


혹 교도나 세상 사람이 비구·대처 분쟁을 빌미로 불법을 낮춰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대성사는 이 같은 말로 조용히 타일렀다. 현실에서 불협화음이 들리더라도 전체를 보는 안목을 갖추라고 당부했다. 진리만을 보기에도 버거운 것이 짧은 인생의 일이니, 부질없는 잡음에 크게 마음 쓰지 말라는 것이다.


기성 승단의 불협화음을 들으면서 밀교에 대한 대성사의 믿음은 더 굳어갔다. 홀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 수행의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경전 내용과 의궤를 찾고 펼쳐 보였으며 스스로 생활 속에서 드러내 보이니 교단 안에서 신임은 깊어졌고 교도들이 대성사의 가르침에 의지하는 바가 더 커지고 있었다.


대성사는 법문을 할 때나 심인당에서 교인을 대할 때, 경전을 번역할 때도 한결같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진실된 말이 아니면 입에 담지 않았으나, 늘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았다. 상대를 꿰뚫는 강한 눈빛에 처음 보는 이들이 모두 굳었으나 한두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빙그레 웃는 모습에 대성사의 진면목을 알게 된다고 했다. 

어린 사람이나 나이든 이를 똑같은 자세로 대하였다.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나이든 이들이 혹 교리를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질문을 할 때도 그가 알아 들을 때까지 진심을 다해 말을 이어갔다. 같은 질문을 수없이 해도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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