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와 활의 의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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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13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12-01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법장담론페이지 정보
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자유기고가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12-15 15:43 조회 23회본문
대승불교에서 활은 반야의 지혜와 삼매 상징
밀교에서는 자아의 현실 직관하는 수행 비유
필자가 취미로 하는 운동 가운데 하나가 국궁이다. 국궁은 우리 민족의 전통 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과거 불교문화연구원 시절부터 익혔으니 필자가 집궁한 지 25년 가까이 된다. 전통 활 가운데 각궁은 물소 뿔과 대나무, 아까시나무, 쇠심줄을 민어 부레풀로 붙여 만든 복합궁이다. 고구려 무덤에서는 소 늑골로 만든 복합궁이 발견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이 활을 쏜 기록으로 가장 오랜 것은 제2대 단군인 부루 단군 시대의 <어아가(於阿歌)>에 나타난다. 1921년 상해 임시정부 시절 <어아가>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1925년 7월 1일 <개벽> 제61호에 게재된 <조선 민족만이 가진 우월성> 가운데 “어아어아 선심(善心)은 활이 되고, 악심(惡心)은 관사(貫射)이라”라고 한 대목을 볼 수 있다. 고조선의 관직 제도에서 활은 출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우리 민족과 활의 인연은 아주 일찍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필자는 오랜 인연 때문인지 불교와 활을 주제로 두 차례 연구 발표하는 기회를 가졌다. 발표에서 불교와 활의 관계에 대해서도 약간 언급하였다. 요약하면 불교 경전과 계율 가운데 적지 않은 활의 비유나 인용을 볼 수 있으며, 불교 의례 가운데 활과 화살이 중요한 의식 도구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석가모니 붓다의 전생담에서 태자 시절 활을 연마한 것과 율장에서 붓다 시대에 활이 전쟁과 수렵의 중요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대승불교 시대에는 활을 반야의 지혜에 비유하거나 활이 지닌 집중을 불교 삼매에 비유한 경문을 빈번히 볼 수 있다.
밀교 시대의 활은 반야의 지혜로서 전통의 이미지를 계승한다. 그런데 밀교 시대 활은 반야와 대락사상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상징 도구가 되었으며, 후기 밀교 시대 꾸루꿀레의 수행 전통에서 중요한 요소로 다루어진다. 한마디로 붓다 시대 활과 화살은 밀교 시대 활의 의례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다. 불교에는 무수한 의례의 소재가 다루어지기 때문에 활이 등장하는 의례를 한정하기는 어렵다. 이 중 ????금강정경????계 의례 가운데 등장하는 활을 소개하면 금강계 만다라에 등장하는 활은 아촉 여래 부족을 구성하는 금강애보살(金剛愛菩薩)의 지물로 등장한다. 금강계 만다라의 오불 가운데 비로자나 여래의 부족은 진리의 절대성, 부동의 열반, 영원성을 상징한다. 반면 아촉 여래는 절대 세계로부터 생명이 출현하기 위해 의식의 눈을 최초로 뜨는 보리심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석가모니 붓다가 설한 12지연기는 무명으로부터 행(行)·식(識)·명색(名色)으로 나아가는 순관(順觀)의 단계를 거치며 윤회를 전개한다. 금강계 만다라의 관상은 12지연기를 기반으로 확립된 밀교의 관상수행이다. 붓다의 12지연기는 무명으로부터 시작되는 윤회와 무명이 소멸했을 때 드러나는 명(明)을 동시에 언급한다. 붓다가 암시한 무명의 대치인 ‘명’은 원래 정각의 지혜를 가리킨다. 대승불교 시대 비로자나 여래의 변조광명(遍照光明)은 무명에 대치하는 것으로, 붓다가 암시한 명에서 기인한다. 금강계 만다라의 관상 수행은 현상계의 대긍정의 관상법으로 절대 세계로부터 보리심의 눈을 뜨고 나아가 긍정의 분별로서 보생 여래 부족으로, 또한 자비의 무량수 여래 부족과 행동, 현실화를 지지하는 불공성취 여래의 부족으로 전개된다. 한마디로 금강계 만다라는 인간 현실에 대한 대긍정의 깨달음을 촉구하는 의례인 것이다.
금강계 만다라에서 활이 관여하는 것은 바로 아촉 여래 부족으로서 여래의 남방에 자리한 금강애보살이다. 한역본 ????진실섭경????에는 금강애보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이때 박가범께서는 다시 마라대보살삼매야(摩羅大菩薩三昧耶)에 들어가 살타에 가지하시니 이를 금강삼마지라 이름하며, 일체여래수염삼매야(一切如來隨染三昧耶)로서 일체여래심이라 부른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다음의 진언을 염송한다. 바아라 라가(嚩日囉二合 邏引哦)”
여기서 마라대보살삼매야라고 한 것은 석가모니 붓다가 물리친 마라(魔羅)를 가리키며, 구체적으로 온마(蘊魔)·번뇌마(煩惱魔)·사마(死魔)·자재천마(自在天魔)를 가리킨다. 진언수행자가 가지한 수염삼매야의 수염(隨染)은 인간의 무명, 번뇌, 욕망과 같은 현실을 대상으로 한다는 뜻이다. 진언의 내용은 ‘바즈라 라아가(vajrarāga)’인데 라가(rāga)는 감각, 욕망, 탐애를 가리키며 중생이 늘 길들어 있는 사소한 마음도 라가에 기인한 것이다. ????진실섭경????에서 밀교의 바즈라, 즉 금강은 반야지의 불변성을 상징한다. 요약하면 인간 욕망의 현실을 반야의 지혜로 관조할 때 드러나는 인간 현실과 욕망의 긍정이라 말할 수 있다. 즉 활을 당길 때 과녁에 대한 집중과 삼매의 경계가 인간 자아의 현실을 반야지로 직관하는 밀교 수행에 비유된 것이다. (계속)
<사진> 금강애보살(金剛愛菩薩). 출처: 불교진적간행회(佛敎珍籍刊行會) <신찬불상도감(新纂佛像圖鑑)> 제2권[地之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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