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은 마음
페이지 정보
호수 313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12-01 신문면수 14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십선성취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남혜 필자소속 법성사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12-15 15:45 조회 22회본문
사람은 하루하루 살아가며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행복한 일도, 괴로운 일도 만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가치관과 성향[업(業)]을 형성해 간다. 이러한 삶의 과정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힘은 ‘바라는 마음’이다. 바라고 원하는 마음은 몸과 입과 뜻으로 행위를 하는 원인이 된다.
불교에서 이러한 바라는 마음을 ‘갈애(渴愛)’라고 부른다. 갈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다. 여섯 가지 감각 기관[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이 감각 대상[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에 부딪칠 때마다 더 좋은 것을 바라는 갈애가 일어나는데, 이것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다. 둘째는 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우리가 오래 살고 싶다거나 더 좋은 곳에 태어나고 싶다는 것, 이런 것이 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셋째는 비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비존재에 대한 갈애는 이 삶이 끝나기를 바라고, 또 죽고 싶다는 마음, 허무에 대한 갈망을 말한다. 비존재에 대한 갈애는 싫은 것을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누구를 미워할 때도 좋아서 미워하고, 우리가 스스로 괴로울 때도 괴로워하는 것을 좋아해서 바라기 때문에 괴로움이 그치지 않는다.
‘바라는 마음’은 괴로움이며 윤회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하지만 중생은 갈애를 행복이라 느끼며 바라고 또 바란다. 이를 『반야심경』에서는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즉 “무명 때문에 괴로움을 행복이라 이해하는 잘못된 망상에서 벗어나야 궁극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수[受, 느낌]에 이어 애[愛, 갈애(渴愛)]가 일어나면 도(道)와 과(果)에 이르는 열반은 결코 실현할 수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느낌에 이어 화냄, 성냄, 근심이 따라오면 도과에 이르는 열반을 실현할 수 없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이러한 이치를 우리와 같은 중생이 이해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수행을 통해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가 어려운 재가 신도에게 방편으로 자비로써 복을 많이 지으라고 말씀하셨다.
이외수 작가의 소설 <벽오금학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주의 본질적 구성요소가 바로 아름다움 그 자체이니라. 풀과 나무는 아름답고자 하는 소망에 의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고, 씨앗을 싹틔우는 것이니라. 본디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그 소망은 비단 풀과 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의 이유이니라.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즉, 행복이란 바로 마음이 아름다워진 상태가 아니면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니라. 따라서 아름다움을 모를 때 사람은 불행한 법이니라. 허나 때로 어리석은 인간은 현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소망과 욕망을 혼동하면서 살아가고 있느니라. 욕망에 아름다움을 더하면 소망이 되고 소망에 아름다움을 빼면 욕망이 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는 실정이니라.”
종교라는 것은 행복해지고자 하는 사람의 소망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이 종교를 믿는 이유도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바라는 마음에 아름다움이 빠지면 욕망이 되고, 바라는 마음에 아름다움이 더해지면 서원이 된다.
과거는 대부분 회한이며 아쉬움이다. 우리의 추억은 깨진 유리의 파편처럼 다시 붙일 수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다. 존재한다는 것의 속성이 무엇인지 아는 지혜는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얻을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그 마음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