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 칼럼 지혜의 눈 | 동양 종교, 생성과 소멸 반복의 과정에 주목 | 12-05 | 1453 | 
                
            | 15 | 칼럼 지혜의 눈 | 축(軸)의 시대 사상가들의 가르침 | 11-06 | 1615 | 
                
            | 14 | 칼럼 지혜의 눈 | 서양의 근대화와 불교 | 10-04 | 1744 | 
                
            | 13 | 칼럼 지혜의 눈 | 영화 ‘나랏말싸미’와 불교의 역할 | 09-05 | 1598 | 
                
            | 12 | 칼럼 지혜의 눈 | 스승 찾기와 스승 되기 | 08-01 | 1710 | 
                
            | 11 | 칼럼 지혜의 눈 | 비교 좀 하고 살면 안되나? | 07-01 | 1841 | 
                
            | 10 | 칼럼 지혜의 눈 | 생로병사, 과연 고(苦)인가? | 06-07 | 2374 | 
                
            | 9 | 칼럼 지혜의 눈 | 끼리끼리 문화 속 홀로서기 | 01-25 | 2572 | 
                
            | 8 | 칼럼 지혜의 눈 | 무소득(無所得)과 회향(廻向)하는 삶 | 01-07 | 2671 | 
                
            | 7 | 칼럼 지혜의 눈 | 이중의 전도(顚倒)를 벗어나는 해탈(解脫)의 길 | 12-04 | 2592 | 
                
            | 6 | 칼럼 지혜의 눈 | 통한다는 것과 무원(無願) 삼매의 삶 | 11-02 | 2904 | 
                
            | 5 | 칼럼 지혜의 눈 | “상구보리 하화중생”,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사이에서 | 10-04 | 2944 | 
                
            | 4 | 칼럼 지혜의 눈 | 향상일로(向上一路), 창조적 주체성을 드러내는 길 | 09-04 | 3149 | 
                
            | 3 | 칼럼 지혜의 눈 | 허수아비와 무아, 그리고 법신·화신 | 08-07 | 3049 | 
                
            | 2 | 칼럼 지혜의 눈 | 불교는 허무주의인가? | 07-20 | 37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