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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혜의 눈 | 끼리끼리 문화 속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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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01-25 17:26 조회4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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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문화 속 홀로서기

 

기존의 업생(業生) 관성을 끝내려 할 때 원생(願生)”

원력 있는 사람에게는 외로움 없고 왕따도 아니야

 

 

새해가 되면 뭔가 달랐으면 하는 기대를 하지만 막상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갖가지 어려움과 병고 등으로 곳곳에 신음소리는 여전하고 온갖 나쁜뉴스들로 눈과 귀가 마비될 정도이다. 특히 내편 네편 갈라서 부딪치는 갈등의 파열음들은 가뜩이나 힘든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혼자 살면 그런 문제는 없으려나 싶지만 세상은 온갖 관계들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그 관계들은 혈연, 지연, 학연 등 갖가지 인연들로 중첩돼 있다. 다양한 관계와 인연의 그물 속에서 우리는 그때그때 강하게 끌리는 인연에 빨려 들어간다. 천태만상의 인연은 우리들 삶에 있어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고통을 양산하는 점이 문제이다.

끼리끼리 문화와 그 속에서 파생하는 차별과 배타, 왕따는 정도만 다를 뿐 보통 우리들의 일상 속에 배어 있는 것 같다. 지역이 같다거나 출신 학교가 같다거나 하면 괜히 더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던가. 또 선택한 이념이나 종교 따위가 같다든지 하면 어떤가. 차이를 존중이 아닌 차별이나 배타, 왕따로 이어가는 선하지 않은 측면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끼리끼리 문화에는 나름의 규율이 있어 그 규율을 키지 않으면 왕따를 시키거나 쫓아내기도 한다. 이는 같은 그룹 내에서도 때때로 차별과 배타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한 정당의 당론이 결정되었을 때 소속 국회의원이 정치 생명을 걸고 당론을 어기면서까지 크로스보팅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심지어 깡패 그룹 안에서도 의리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처럼 그룹 간에 뿐 아니라 그룹 내 소그룹 간에, 친척이나 친지 간에도, 가장 작게는 개인들 간에도 친소가 있고 한발 더 나가간 차별과 배타가 있을 수 있다. 차별과 배타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차원을 달리하며 다양한 양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최종적으로 믿을 것은 자기만 남는다.

우리 내면의 끼리끼리 문화는 결국 자기를 보호하려는 자폐(自閉)의 한 측면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자기에게 유리한 곳에 어울리려 하고 불리한 곳으로부터는 떠나려 하는데서 자기의 범위를 좁게 때로는 넓게 잡으며 이합집산에 참여한다. 이 모두가 자기를 위한답시고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것이 상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고 그런 사회적 행태 속에서 자기 또한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보통 우리들의 삶인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어느 곳에도 쉬이 마음을 줄 곳 없는 외로운 섬처럼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중간지대의 회색인간처럼 되어 가는 사람이 늘어가는 것은 아닐까. 변화를 주도하기에는 용기도 지혜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싸움판에 끼어들기 싫어서, 모두가 승리하는 길을 찾지 못한 데서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어서 혹은 무기력하게 기존의 관행을 따르는 것이 업생(業生)이라 할 있다. 그러한 업생의 관성을 약화시키고 끝내려는 것이 바로 원생(願生) 아니겠는가. 자기를 개혁하는 수행은 바로 이러한 원생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는 도반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도반을 찾지 못하면 외로운 홀로서기라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부처님 말씀은 처음부터 혼자서 가라는 것이 아니고 도반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뒤 도반을 만나지 못했다면 휩쓸려 다니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이셨다.

업생의 흐름을 벗어나 영원한 행복, 열반을 지향하는 길은 자기 확신에서 비롯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사바세계인 것 같지만 개인 내면에서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혼자라고 무조건 외로운 것이 아니고 왕따란 지적도 가당치 않다.

 

김봉래(불교방송 보도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