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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십대제자 | 목련존자와 함께 앗사지 만나 부처님께 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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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08-01 14:20 조회2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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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십대제자

지혜제일 사리푸트라 존자(3-2)

목련존자와 함께 앗사지 만나 부처님께 귀의

 

세상에 아라한이 있다면, 아라한의 도를 갖춘 자가 있다면 바로 저 비구도 그 중의 한 분일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 출가했으며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누구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가를 물어봐야겠다.

 

사리푸트라는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비범하여 논쟁에서는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 소문난 논사인 자기 아버지조차도 사리푸트라에게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고 한다. 사리푸트라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면으로 너무나 뛰어나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를 당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사리푸트라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훌륭한 스승을 만나 학문을 넓히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스승을 찾아다닌 끝에 산자야 벨라티풋타(Sanjaya Belaṭṭhiputta)라는 사람을 만나 스승으로 모셨다. 이 사람은 육사외도의 한 명으로 거론되는데 부처님 당시에는 나름대로 유명한 사상가였다. 그는 그 당시 가장 큰 나라였던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왕사성) 근처에 250명이나 되는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산자야의 주장은 절대의 진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또 있다 해도 알 수 없는 것이라는 회의주의(懷疑主義) 내지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이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세상의 철인(哲人)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주장만이 진리이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모두 오류라고 하는데 그러면 어느 것이 진짜 진리인가? 진리란 결국 하나 밖에 없을 것인데 각자가 다 자기의 주장을 진리라고 하여도 모두 그러한 것은 주관적인 것이다. 유일의 객관적 진리가 인식되어질 수 없는 한 주관의 입장에서 서로 논쟁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며 그런 시시비비를 버리고 진실된 실천으로 향하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고 했다. 이 사람은 형이상학적인 모든 의문에 대하여 확실한 답을 주지 않고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에 뱀장어처럼 미끄러워 잡기 어려운불가지론자이기도 했다. 산자야는 예를 들면 사람들이 사후의 세계에 대해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만일 당신이 사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사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와는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지 않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대답이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그를 뱀장어 같은 궤변자라고 했던 것이다. 불가지론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모든 것에 회의를 가지고 객관적 진리를 얻을 수는 없다고 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서 모순을 지니고 있었다. 객관적 진리라는 것이 없다는 그 말 또한 하나의 주관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그것도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 진리라는 것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진실된 실천이라는 것을 향해 나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러한 회의론을 궤변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람들을 외도라고 칭한다.

사리푸트라도 그가 유명하다고 해서 그의 밑에서 배우고는 있었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에 늘 불만이었다. 산자야 밑에는 목갈라나(Moggallāna, 목건련(目犍連)라는 고향 친구도 있었는데 이 분이 바로 나중에 신통제일 목련존자로 불린 그 목갈라나이다. 이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마음이 잘 맞았지만 워낙 지혜로운 사람들이어서 산자야 밑에서 공부는 하고 있었지만 산자야의 주장에 도무지 수긍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산자야가 유명세는 떨치고 있었지만 바른 도를 찾아 나선 이들에게 산자야의 불가지론이 양이 차지 않았을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누구든지 먼저 참된 스승을 만나거나 진리를 들으면 나머지 한 사람에게도 반드시 알려 줄 것을 서로 약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마침내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가 부처님과 만나게 된 인연은 이렇다.

그것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왕사성)에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로 보인다. 나중에 부처님의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된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Moggallāna, Maudgalyāyana:目犍連;)는 앗사지 비구를 인연으로 왕사성에서 부처님과 만나게 된다. 앗사지(Assaji, 阿說示, 馬騰)는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최초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던 다섯 비구 가운데의 한 사람이다. 그는 부처님께서 우루벨라를 거쳐 오시는 동안 부처님보다도 먼저 라자가하에 와 있었던 모양이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오신 것은 바라나시에서 다섯 비구와 야사 등의 제자들과 헤어진 지 약 반년 정도 뒤였다고 한다.

하루는 앗사지가 왕사성에서 탁발을 하고 있었는데 사리푸트라가 이를 보고 있었다. 앗사지는 깨달음을 얻어 이미 아라한이 되어 있었는데 탁발을 하며 거리를 다니는 모습이 아주 의젓했다. 의복도 단정하고 태도가 품위가 있었다. 경전에서는 앗사지에 대하여 나아가고 물러서고 앞을 보고 뒤를 보고 굽히고 펴는 것이 의젓하였고 눈은 땅을 향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훌륭한 몸가짐을 갖추고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당시 불교의 출가자만큼 여러 가지가 절제되고 품위가 있는 사문들은 드물었던 모양이다. 그러한 앗사지를 보고 사리불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세상에 아라한이 있다면, 아라한의 도를 갖춘 자가 있다면 바로 저 비구도 그 중의 한 분일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 출가했으며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누구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가를 물어봐야겠다.’

아마 그때까지도 사리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