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종보 연재글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법경정사가 전하는 밀교연재 |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08-01 14:27 조회228회

본문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아수라심(阿修羅心)

<대일경>에서 설하고 있는 중생의 60가지 마음 가운데 아수라심(阿修羅心), 용심(龍心), 인심(人心)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아수라는 육도(六道) 가운데 하나로서 원래 화를 잘 내고 성질이 포악해서 좋은 일이 있으면 훼방 놓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이생에서 욕심 많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죽어서 환생한 축생이 아수라라고 한다. 이러한 아수라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엉망진창이고 시끄럽기 그지없으며 난장판으로 만들고 만다. 그러한 난장판을 흔히 아수라장이라고 한다. 중생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그것이 아수라심이 된다. 마음이 시끄럽고 심란하다면 그것이 바로 아수라심이다. <대일경소>에서 아수라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아수라심이라 하는가? 그것은 즐겨 생사(生死)에 처하는 것을 말한다.” 고 하였다. 어찌해서 생사에 처하는 것이 아수라심인가? 그것은 부처님의 근본교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릇된 중생이 오직 쾌락만을 위하여 무명 속에서 삶을 살아갈 때 그에 따른 고통이 있게 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를 12가지로 나열한 것이 바로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 십이인연설(十二因緣說)이다. 즉 무명으로 인하여 생사 가운데 고통이 따르는데, 고통과 괴로움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그 마음이 바로 아수라심인 것이다. 따라서 아수라심의 시작이 무명(無明)에 의한 것이오, 무명으로 인하여 생()()()라는 과정 속에서 고통과 괴로움으로 살아가게 되므로, 생사에 처한 것이 바로 아수라심인 것이다. 생사 가운데 무명과 쾌락만이 존재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생사 가운데 있게 되는 고통과 괴로움을 소멸하고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부처님께서는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로 말씀하셨다. 좀 더 간략하게 말하면, 지혜를 증득함으로써 고통과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무명은 지혜가 없음이오, 지혜 없음이 고통과 괴로움이므로 무명을 타파하는 것이 바로 고통과 괴로움을 여읠 수 있는 길이다. 무명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로 부처님의 근본교설에 입각해서 수행하고 실천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근본교설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사성제와 팔정도 수행으로써 고()를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일경소>에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만약 수행하는 사람에게 생사의 과보와 쾌락을 즐길 뿐 나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수라의 마음임을 알아야 한다. 무상(無常)과 고() 등을 관찰하는 것이 아수라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이다.” 무상(無常)과 고(), 무아(無我)의 진리를 깨친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이오, 지혜이다.

용심(龍心)

중생에게는 용심(龍心)이라는 좋지 못한 마음이 있다. 용심(龍心)은 용()의 마음이란 말로서 광대자재(廣大資財)를 품고 있는 마음이다. 용은 원래 여의주를 물고 있어 진귀한 보배와 재물을 마음껏 지니게 하는 상서로운 동물에 비유된다. 따라서 용심은 보물과 재물을 탐하는 마음이다. 재물을 탐하는 중생의 욕심을 용의 광대자재에 빗대어서 말하고 있다. <대일경소>에서 용심(龍心)을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탐욕이 많고, 이를 싫어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 바로 용취(龍趣)의 마음이다.” 용취(龍趣)는 용의 세계로서 탐욕심이 가득 한 세계, 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용심 을 없애는 길은 무엇인가? <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수행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 사람의 이익을 구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고, 출세간의 청정한 마음을 장애하게 한다. 적게 바라고 만족할 줄 알며, 무상(無常) 등을 사유하는 것이 그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세간적 성취에만 골몰하고 출세간의 청정을 멀리 하게 하는 것이 용심이라는 것이다. 즉 재물에 대한 탐욕심이다. 그래서 소욕지족(少欲知足)을 강조하고 있다. 적은 것에 만족하고 욕심내지 않는 것이 용심을 다스리는 길이라고 한다. 재보(財寶)는 영원하지 않다. 항상 변하고 변한다. 영원불변하지 않는다. 이를 무상(無常)이라고 한다. 일체가 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무명(無明)과 고()를 여읠 수가 있는 것이다.

인심(人心)

인심(人心)은 사람의 마음이란 뜻으로, 바로 중생심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부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차별하고 분별하여 이해타산을 우선으로 하는 마음이다. 아주 계산적인 사람의 마음이다.<대일경소>에서 인심(人心)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사람이 마음(人心)이라 하는가? 남을 이롭게 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이른바 항상 이런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아무개는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그에게 큰 이익을 얻게 하겠다. 아무개는 나에게 요익하지 않은 바가 있으니 앙갚음을 하리라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을 구별하고 재물과 이익을 취하려는 생각은 모두 인심(人心)이다.”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마음을 말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수행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