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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정사가 전하는 밀교연재 |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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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09-05 16:29 조회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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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중생이 지니고 있는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대일경>에서는 이를 60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여심(女心), 자재심(自在心), 상인심(商人心)이 있다.

여심(女心)은 여인의 마음으로서 애욕에 빠진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부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자재심(自在心)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이 또한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상인심(商人心)은 재산을 열심히 모은 뒤에 쓰임새를 생각하는 것처럼 실천은 없고 계산만 하고 있는 마음을 가리킨다.

 

여심을<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여심이라고 하는가? 애욕의 법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애욕은 이성에 대한 탐착이다. 애욕(愛慾)과 성욕(性慾)에 집착하는 것을 여자의 마음에 비유하고 있다. 여자를 애욕의 대상이자 주범으로 여긴 탓으로 보인다. 애욕을 일으키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은 백번 이해한다고 손치더라도 그 비유는 잘못되었다. 어찌 애욕과 성욕을 여자의 마음에 비유한다는 말인가. 여자를 부정(不貞)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은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계속하여 여심에 대해<대일경소>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여인은 욕심이 많은 것이 남자의 백배다. 언제나 좋아하는 것만 변함없이 생각하고, 혹은 다른 사람의 용모나 자태 등만 생각하며, 수행자로 하여금 청정한 마음을 장애하며 가리게 한다. 역시 오랜 생애 동안 일찍이 여인이 되었기에 아직 본래의 습이 남아 있는 것이다.’

여인의 마음을 부정적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본질은 애욕과 성욕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의 마음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시비로 삼는 것과 같다. 그런데 여심을 없애는 길은 바로 부정관(不淨觀)과 사념처(四念處)라고 한다.

<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부정관(不淨觀)과 사념처(四念處) 등으로 실상을 관하면 이것이 그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성욕과 애욕을 소멸시키는 방법은 초기불교에서 설해진 오정심관(五停心觀) 가운데 하나인 부정관(不淨觀)을 행하는 것이다. 오정심관은 불선(不善)하고 불건강(不健康)한 마음상태를 제거하는 다섯 가지 수행법인데, 그 가운데 부정관(不淨觀)은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이나 신체의 더러움을 관찰하여 몸에 대한 감각적 욕망 등을 끊는 수행법을 말한다.

 

자재심은 자기 멋대로 하는 마음이다.<대일경소>에서 자재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자재심이라 하는가?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기를 생각하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낸다. 그러므로 자재심(自在心)은 진심(瞋心)을 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자재(自在)란 인도 브라만교의 천신(天神)을 말하는데 불교에 수용되면서 대천세계(大千世界) 가운데 하나로서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경지를 나타내며 만물 창조의 신으로 변용되었다. 그 모습은 눈이 셋, 팔이 여덟 개로, 흰 소를 타고 흰 지팡이를 들고 있다. 삼계(三界) 가운데 물질세계인 색계(色界)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천신으로서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신이다. 그러나 이 자재심은 중생의 마음으로서 부정적 의미로 쓰여 자기 고집을 부리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대일경소>의 내용을 살펴보자.

자재란 외도(外道)들이 섬기는 천신이다. 그 종()에서 자재천은 생각하는 대로 모든 중생과 괴롭거나 즐거운 일을 만든다고 한다. 이 법을 구하는 자도 언제나 생각을 이어서 그 본존과 같게 되기를 원한다. 만약 진언을 행하는 사람이 자주 이와 같은 실지(悉地)를 염하고 자기가 바라는 대로 성취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이 지재의 마음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선세(先世)의 습()이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마음에서 괴롭고 즐거운 일을 만든다. 자기 생각에 갇혀 자기 고집을 부려서 자기 마음에 집착한다면, 그것이 곧 고()이다. 그래서 고()를 벗어나는 길은 연기의 이치를 깨닫는 데 있는 것이다. 이를 <대일경소>에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다. ‘모든 법은 모두 다 인연에 속하며 자재는 없다고 관하면, 이것이 그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오고 감이나 이루거나 못 이루는 것도 모두 인연에 의한 것이다. 모든 것이 무상(無常)이오 무자성(無自性)이며, 일체가 공()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법을 깨달으면 자재가 일시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자재심을 다스리는 길은 부처님의 진리를 자각하는 데 있다.

 

상인심은 장사하는 상인(商人)의 마음이다. 그것은 어떤 마음인가. 장사하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이해타산으로 대하는 것이다. 부정적 의미의 마음이다. 상인심을 <대일경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무엇을 상인심이라 하는가? 처음에는 거두어 모으고, 뒤에 계산하고 나누는 법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재화(財貨)를 일단 끌어 모아놓고 그 다음에 쓰일 곳을 생각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계산적으로 대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