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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불심 초보교리학 | 내 떡보다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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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동화교무 작성일18-08-07 14:53 조회86회

본문

왕불심

 

내 떡보다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

 

- 도현 정사 -

 

 

이상하게 내가 고른 옷보다 옆에 친구가 고른 옷이 더 좋아 보이고 내가 주문

하여 내 접시에 담긴 피자조각보다 건너편에 앉은 다른 사람들의 접시에 올려진 피자조각이 더 맛있어 보인다.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이는 이런 이상한 심리는 현실 속에서 수시로 발동한다. 가끔은 친구가 고른 옷이 더 좋을 때도 있고 때로는 내가 선택한 피자가 맛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여 항상 자신보다 남들의 선택이, 상황이, 모든 것이 자신 것보다 우월해 보이고 크게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항

상 남의 떡이 자신이 가진 떡보다 더 크게 보인다는 것이다. 인간이 본능적으

로 가지고 있는 욕심이 남의 떡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다.

 

몇 년 전 충남 당진에서 그 지역에서 나는 쌀을 홍보하기 위해서 무게3,680kg, 지름 3.7m, 높이 40cm, 둘레11.3m 크기의 대형 떡을 20kg자루 쌀

125포대로 만들어 종전까지 일본 가무라푸드에서 만든 2,090kg라지스트

가가미 모찌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큰 떡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인간은 20kg자루 쌀 250포대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떡이 손에 있어

도 여전히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

 

이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슬픈 현실이다. 남의 떡과 내 떡을

바꿔놓아도 역시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

남의 떡보다 내가 갖고 싶은 떡은 더 크게 보인다.

 

대상을 인식하는 지각은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욕구나 동기 등의 영

향을 받는다. 배고플 때는 아무것이라도 맛있다. 자다가 심하게 목이 말랐던

원효는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을 마시고도 그 시원함을 감탄 하며 다시 잠을 이

루었다.

 

인간은 보이는 것을 보는 그대로, 들리는 것을 듣는 그대로, 느낌을 느끼는

그대로 인지하지 않는다. 보고, 듣고, 느끼는 그때의 상황이나 혹은 자신의 필

요나 욕구에 따라 인지된 것을 변형시킨다. 비교하기가 애매모호 한 주관적

인 지각뿐만 아니라 정확한 상대 비교가 있는 고정된 물체의 부피 같은 것도

있는 크기 그대로 인지 하지 않고 주변상황이나 자신의 욕구에 따라 그 크기

를 달리 본다.

 

사물을 인지하는 지각도 당사자의욕구나 동기에 따라 달라진다.

1974년 미국의 심리학자 부르너(J. S.Bruner)와 굿맨(C.C.Goodman)은 똑같은대상을 보고도 각각이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지각)은 자신이 처해진 환경과

욕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기발

한 실험을 했다.

 

유복한 가정과 빈곤한 가정에서 자란 지적수준이 비슷한 10세의 어린이들을 모집하여 1센트, 5센트, 10센트 25센트, 50센트의 다섯 종류의 동전을 보여주고 그것과 같은 크기의 원을 그리도록 주문을 하였다. 그 결과 빈곤가정의 어린이들은 모든 동전을 실제보다 크게 그린 것이다. 한편 유복한 가정의어린이들은 빈곤가정의 어린이들이 그린 정도로는 원을 크게 그리지 않았다.

 

빈곤가정의 어린이들에게 동전이 크게보인 것은 부유한 가정의 어린이들보

다 빈곤한 가정의 어린이들이 돈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고 추측되어진다.

 

팔정도(八正道) 정견(正見)

위 실험의 결론은 남의 떡보다 내가먹고 싶은 떡은 더 크게 보인다.”이다.

상황의 유불리, 대상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 혹은 고정관념 등이 대상을

판단하는데 방해와 착오를 불러오는 대표적인 것들로서 인간이 사물이나

대상을 접할 때 투영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물이나 대상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깨달음과 해탈로 이끄는 수행의 바른 여덟 가

, 팔정도(八正道)중에 그 첫 번째에 정견(正見)이 나오는 것도 아마 그 이유

이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는 견해, 대상을 집착과 욕심 그리고 손해

와 이익 내려놓고 바라볼 때 본래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