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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시대, 불교운동의 성찰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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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3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2-04-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총지논단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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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5 17:57 조회 1,8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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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시대, 불교운동의 성찰과 전망

한국불교 역사의 흐름과 함께해온 불교사회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며 참회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우리사회의 대 으로서의 불교운동이 자기비전을 제시하고자 불교사회단체 활동가 워크샵이 지난 3월22〜23 일 서울 관문사에서 열렸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경불련, 불교환경교육원 등 70여개 단체가 모여 ‘다양성의 시대, 불교운 동의 성찰과 전망’ 이라 는 주제로 연대가능성과 그 전망을 모색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총지종사회복지재단 사무국장 서동석, 한살림 상임연구원 윤형근, 한겨레신문 문화부기자 조연현씨의 발제문을 싣는 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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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운동 전문영역확대왁 전문인력양성 필요

불교의 민중화를 위해 사회참여를 하게된 동기는 80년의 10.27법난을 꼽을 수 있다. 그만큼 80년의 상황은 한국사회에서 절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은 민중불교운동의 근거를 초기 불교가 담고 있는 실천적 정신에서 찾고자 하였다. 고통받는 중생과 함께 해방되는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 청년불자상을 건설하고자 했다.

그래서 81년 ‘여래사운동’ ‘민중불교운동연합’ ‘민족자주통일불교협의회 ’ ‘정토승가회 ’ ‘대승불교승가회’ 등으로 조직적 분화로 이어 졌다.

이후 불교의 사회운동은 90년대 이후 확실히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80년대처럼 총제성을 띤 운동이 아니라 나름대로 전문성을 띤 시민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아직 정확하게 정착되지 않은 탓에 시민적 권리를 지키고 법률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에는 미티지 못하고 있으나 시민의 후생과 복지에 관한 방면에서는 좋은 활동과 경험의 축적을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제고하는 활동 즉 후진국의 기아에 대한 구호활동이라든지 북한 및 조선족 동포를 후원하는 활동등은 90년대가 낳은 불교운동의 또다른 모습이다.

최근에는 소비자보호 운동으로까지 불교의 사회운동 영역이 확대되고 있으며 더욱 활성화 될 전망이다. 또한 전문영역으로 확대하기 위한 전문인력의 양성과 이념의 확립이 과제인데 이것이 해결된다면 불교의 사회적 역할은 더없이 제고될 것이다.

불교운동의 새로운 모색을 위해 과거 운동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성과의 계승으로 출발을 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적 불교운동을 위해 진지한 논의와 실천을 담보하여 과거 선배들이 보인 열정에 뒤지지 않은 실천으로 한국불교의 활기찬 생명력은 더욱 빛을 얻게 될 것이다.



윤형근(한살림상임연구원)

한국사회 운동의 페러다임의 전환

과거의 운동은 철저하게 적과 나를 구분했고 운동의 주체와 대상을 가르는 대상화의 문제, 물리학적 운동의 한계를 띠게 된다. 시민운동의 형태를 띠는 운동은 권리회복 운동, 테크노 크라트들의 기술적 합리성에 대해 시민사회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내세워 근대적인 자율적 개인의 형성과 근대적 계약사회, 공정한 규칙의 사회를 형성하는데 주력한다. 이런 움직임은 정부와 시장을 견제하는 시민사회를 형성하여 비제도적 정치영역을 구축한다,

시민운동은 사회 각 분야의 민주적 개혁과 민주적 운영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지역주민운동을 강화하여 중앙집 중화된 사회를 분권화, 민주화하는데도 일익을 담당하고 자율적 자치적 시민층의 형성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율적, 자치적 시민 형성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직 시민 참여도가 낮고 그로 인해 여론을 환기시키는 이 슈/이벤트 중심의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생명운동은 기존의 사회체계가 제시하는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수정하고자 한다. 생명운동의 문제의식은 시민운동과 다르다. 생명의 그물로서의 세계, 즉 인간과 자연 우주의 유기적 연관이라는 생태적 사유와 동 시에 우주적 존재로서의 인간, 즉 인간의 몸과 이성, 감성을 포함한 전인적 개인에 대한 이해를 통해 영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문명전환의 주체 로 부각시킨다. 나눔과 협동을 통한 ‘살림’을 실천의 지침으로 삼아 협동과 공유와 나눔 그리고 자연과의 호혜적 연관을 토대로 한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 나가는 적극적인 운동으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토착적이고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를 모델로 하고 있다. 생명운동은 환경, 생태문제에 대한 모색, 즉 인간과 자연의 관계 회복뿐만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회복, 내지는 인간과 자기 자신과의 내면적 관계회복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생명운동은 우리에게 새로운 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기획, 주요섭이 삼재론을 빌어 제기하는 영성, 문화운동, 환경, 생태운동, 자치상생체 운동을 통한 영적인 삶, 생태적 삶, 사회적 삶의 통합적 전망을 통해 문명의 전환을 기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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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신문 문화부기자)


수행과 불교사회운동의 일치 필요

부처님은 출가뒤 진리를 깨달아 중생이 집착을 놓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사성제), 우리 모두 가 ‘너‘가 없인 ‘내’가 존재할 수 없는 한 생 명임을 깨달으시고(연기법)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동체대비심을 일깨웠다. 수행을 하는 것은 그런 깨달음에 이르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운동을 하는것도 그런 깨달음에 이르고, 그런 삶을 통해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만들기 위한 것이다.

운동은 활을 떠난 살과 같이 관성에 의해 ‘목적 지향적’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매순간 살피고, 깨어있지 않으면 무엇을 위한 운동인지 혼동될 만큼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 평화운동을 한다면서 스스로 폭력적이 될 수 있고 환경운동을 한다면서 스스로는 반 생명적일 수도 있다.

설사 운동의 성과가 더디더라도 불교운동의 에너지원은 분노가 아니라 동체대비심의 에너지여야 한다. 부처님의 사촌동생인 제바닷다가 부처님이 교단을 물려주지 않자 성난 코끼리를 외길에서 부처님을 향해 내몰때도, 99명을 죽인 살인마 앙굴리라마가 칼을들고 달려들때도, 생명을 위협하는 일촉즉발의 위기였지만 부처님은 이때조차도 자비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것은 탐. 진. 치 삼독심이 녹지 않으면 쉽게 택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내외의 압력과 폭력을 감당할 인욕과 붓다의 길을 따르겠다는 서원없이는 따르기 어렵지만, 그것이 붓다의 운동방식이며, 붓다를 따르는 수행자의 운동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불교적 깨달음의 궁극은 평등지이다. ‘나’ ,’내 지역’,’내 편’,’내 종교’의 아집에서 벗어나 일체에 대해 평등하게 자비의 마음을 내는게 대승보살의 마음이다.

대승불교의 가치관인 보살의 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일체 중생을 내몸 과 같이 생각해 모든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자무량심. 모든 중생의 고통을 벗겨주려는 비무량심. 모든 중생을 기쁘게 하려는 희무량심. 차별 심을 버리고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여기는 사무량심. 이 사무량심이야 말로 불교 활동가들은 가져야할 마음가짐이 아닐까. 대승보살의 마음을 잊지 않고 활동하는 불교활동가가 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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