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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의 불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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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4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2-05-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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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6 06:13 조회 1,9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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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의 불교 이야기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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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 수를 헤이릴 수 없을 만큼 많은양의 민화가 남이있다. 꾸밈 없이 살아온 서민의 삶 속에서 태어난 민화는 우리 겨레의 신화와 종교 우리의 정신이 깃 들여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한국의 민화는 그 시초를 고구려 벽화부터로 보고 있으며 고려시대에도 나름대로의 민화적 표현이 았었겠으나 오늘날 전혀 남아 있는 것이 없고 다만 불화 등에서 단편적으로 일부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민화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직한 것은 조선시대부터라 할 수 있으며 지금 남아 있는 대부분의 민화도 조선시대 후기의 것이다. 민화가 서구나 중국처럼 감상만을 위해 그려진 그림이 아니고 장벽에 붙이고 병풍을 꾸며서 생활의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장식적 기능을 가진 그림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조선중기 이전의 민화는 계속되는 도배에 묻혀 소멸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우리나리이 기후는 일년 중 삼분의 일이 겨울이므로 추운 겨울 외풍을 막기 위해 집 전체를 남쪽을 행해 작게 지였으며 창문도 작게 내었다.

또한 외풍을 막기 위해 도배를 하였다. 첫째 흙벽의 부스러기나 먼지가 흘러내리거나 날리지 않게 하기 위해, 둘째 벽 가징자리의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찬비람을 막기 위해, 셋 째 방안의 분위기를 따스하고 아늑 하게 하기 위해 도배를 히였고 창호지도 함께 발랐으며 2년-5년에 걸쳐 도배를 히였으니 벽에 장식한 민화가 오래도록 남아 있기 어려웠으리라.

정통회화의 범주에서 벗어닜다는 이유로 잡화 속화. 별화 등으로 불리 우며 천시 받던 민화에 정식으로 이름을 부여한 시람은 일본인 미술 평론가 니기무네요시(1889-1961)이다.

1919년 일본 교토에서 일본 민예품 전람회에 출품된 일본의 토속적 회화인 오쓰에 민화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1937년〈공예》에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위하여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서 구입되는 그림을 민화라 하자라고 발표함으로써 민화라는 어휘가 문자로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명확한 개념도 부여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은 일본의 토속회화에 붙여 준 이름이였고, 이나 기무네요시가 조선의 민속적 회화 민화라는 말을 사용한것은 1959년〈민예)에 실린. ‘불가사의한 조선 민화라는 논문에서이다. 그는 이 글에서 민화의 특징으로 불가사의한 미의 극치, 무의식과 무의도의 개성을 들면서 민화는 상상도 못할 만큼 신선하고 자유스러운 작품이어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한국 민화가 올바로 개발되어 알려지기만 힌디면 온 천하의 관심을 끌기 충분한데도 오늘날 한국 민화의 전통은 날로 스러져 가고 연구하려는 다짐도 없어 인타까운 일이다’라고 말히였다.

그러나 일본인 아나기무네요시에 의해 한국의 민화가 주목받기 시작하고 인정받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애초에 아나기무네요시가 민화라고 가리킨 일본의 오쓰에는 길가에서 여행자들에게 그려팔던 기념품으로 여기서 따온 듯한 민화라는 용어가 오히려 우리의 민화의 질을 오쓰에와 동격으로 여기는 결과를 낳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때문에 민화의 애호가인 김호연도 저속하고 국한된 일본의 오쓰에와 우리 민화가 동일시될 수 없음을 역설하면서, 우리의 민화는 우리 겨레의 생활 철학과 생활 감정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생활 미술이므로 겨레 그림’ ‘민족회회라고 부르는 것이 티당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아나기무네요시가 일본의 오쓰에를 민화라고 부르기 시직하고 우리의 민화에도 같은 용어를 사용한 것을 우리 일부 인사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여 사용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영학. ‘대원사. 1993)

1970년대에 들어서 여러 방면으로 민화를 연구하기에 이러며, 민화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빙법에 있어서 많은 민화를 놓고 여러 시람들이 분류를 시도 티당성이 있는 분류 빙법도 내놓고 있다. 민화는 용도와 기법, 재질, 주제 등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데, 연구자에 띠라 각각 그 빙법과 내용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민화는 화제에 의한 분류가 가장 많지만 여러 가지 소재나 주제가 복합적으로 혼합된 것도 많기 때문에 실제로 정확하게 분류한다는 것은 어려울것이다.

조자용은 민화의 내용을 상징별로 수. 쌍복. 자복. 재복. 영복. 녹복. 덕복. 길상. 벽사. 민족등 열가지로 나누고 또 이를 다시 화제별로 나누어 20항목으로 전반적인 종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윤열수. ‘예경, 2000)

김호연. 김영학 등이 각각의 분류법을 제시하고 있다.

민화는 소박 딤백한 표현 외에 익살이 있어 좋다고들 힌다. 그러나 민화 그 자체의 작품성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예술성을 찾아 회화적 성격을 빍힌다는 자세로 민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소박, 담백, 익살 외에 정면성. 입체성. 과장성. 의인성. 환상성 등이 표현되어있고, 그러한 독특한 표현 중에는 근대 서구 미술 보다 훨씬 앞선 것도 있다고 한다.

민화적 소재를 현대적 안목으로 재해석한 박생광 (1904-1985)고정 된 자의식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잉한 창조적인 시도를 하여 민화의 무계획화된 그림이나 잡기어린 그림 등을 변용하여 한국적 정서의 소빅함을 표현한 운보 김기창(1914-2001)그는 민화에서 보이는 단순한 형태와 색채 그리고 무시된 원근법 소박성을 그의 그림에 그려 내고 있다.

그 외 민화에는 기복신앙(수복신앙)과 벽사 신앙이 녹아 있다. 민화는 민족의 가장 본질적인 의식과 정신문화가 담겨 있는 그림으로 인정받으면서도 미술사에서도 미술사 분이에서 적극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분야이다. 민화가 가지고 있는 조형성은 오늘날의 회화 표현 빙법에 다양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원천이다. 시대의 미감이 충실하게 녹아있는 민화의 독특한 시각과 채색 기법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한한 예술적 영감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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