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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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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7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2-09-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현묵의 세상읽기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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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7 07:05 조회 1,7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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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의 진실

뭐 특별히 일상 생활에 더 지장을 주지 않는 까닭에 그냥 무심코 지나 치지만 어느 때는 이런 의문을 갇는게 보통이다. ‘도대체 상품의 가격은 어떻게 매겨지는 것일 까?’ 가장 상식적일 것 같으면서도 막상 묻게되면 말문이, 막히는 이 물음에 답하려면 우선 ‘상품’이 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상품을 간단명료하게 정의하면 ‘교환을 목적으로 생산한 생산물’ 이 곧 상품이다. 

즉 개개의 생산자가 서로 자기들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서로 가 생산하고 그 생산물을 ‘시장’을 통해 실현하는 노동의 산물이 상품이다.

생산물의 교환은 무지하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부터 그 교환의 역사는 시작되는데, 물론 원시공동체사회는 그 공동체 내부에서 ‘분배’만 있었지 ‘교환’은 아직 없었다. 그때는 공동체와 공동체간에 필요에 따라 생산물을 맞바꾸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생산력의 증대로 점차 생산물의 일정한 량이 사유화되고 마침 내 공동체 내부에서도 생산물의 교환이 나타나게 된다. 이때에야 생산물은 ‘상품’이라는 명칭을 얻을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 상품이여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교환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는 노동의 산물이여.

인류사의 각 발전단계, 즉 원시공동체사회를 거쳐고대노예제사회, 봉건제사회 그리고 현재의 자본제 사회에 이르기까지 상품은 꾸준히 그 위세를 지켜왔다. 하지만 상품이 지배적인 형태로 나타난 사회는 자본제사회다. 여기에 이르러 상품은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와는 완연하게 다른 위치에 있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세포로서 존재하며 인간을 자본에 예속시키는데 절대적인 존재로 추앙 받게 되었다. 상품은부의 원천이자 그 부에 예속되어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게 만드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럼 그 상품의 가격은 어떻게 매겨진다는 것인가?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산된 생산물을 상품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좀더 명료하게 규정한다면, 어떠한 생산물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그것은 노동의 산물이라야 하며, 둘재 사회적 사용가치를 갖고 있어야 하며, 셋째로는 교환에 의해서 양도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흠, 사용가치라.....

그렇다. 서로 다른 상품이 일정한 비율로서 교환되려면 기준이 되는 척도가 있어야 하는데, 그 척도를 가늠하는 것이 곧 가치다. 상품이 얼마나 효용성을 갖고 있는가 하느 가치, 다른 말로 사용가치이며 아물러 과연 쓸모가 있는가 하는 교환성을 가져야 한다.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통일물이다' 그럼 가치는 무엇으로 저울질 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그 상품생산에 소용된 노동의 총량, 또는 그 상품, 그 사용가치의 생산을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럼 가격은? 간단하다. 상품의 교환가치를 일정액의 화폐로서 표시한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 형태를 띤 사회에서 상품의 교환, 즉 거래는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다툼에 의해 이뤄지고 규제된다. 따라서, 가격이 경제의 중심문제가 되며 우리들 모두의 생활이 가격생활로 나타난다. 가격을 표시하는 화폐는 인간의 노동으로 생산된 상품과 동일체이면서 ‘특수한상품’인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상품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자본가는 시장에  우위에 있으려고 더많은 생산을 위해 임노동자의 고용과 자본재설비에 박차를 가한다. 그 생산원가를 절감하고자 보다 좋은 설비를 들이고 반면 생산에 투하되는 노동력을 줄이거나 싼 노동력을 고용하고자 백방으로 노심초사한다. 그래야만 자본은 이윤으로 자신을 증식할 수 있거니와 적절한 산업 예비군(실업자)를 유지하여 노동의 가치보다 낮은 가격으로 임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본은 잉여이윤을 넘어 초과이윤을 획득하려고 자본가라는 인격체를 막후 조종하는 것이다.

일반상품은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것이 보통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토지도 엄청 좋은 상품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일반 상품과는 달리 토지, 즉 땅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다. 흔히 부동산 가격을 들먹일 때 가용할 이를 늘리면 부동산 가격이 안정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거짓말이다. 국가의 경제정책을 수립한다는 고위관료나 그에 부하뇌동하는 지식인 들이 그런 거짓말로 선량한 국민을 속이면서 실은 자신들의 부를 늘리고 있다. 땅값의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의 배후에 ‘자본’의 자기증식이라는 벌건 속내가 도사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왜 그런가? 경제학에서는 땅값이라는 말 대신 유식하게 ‘지대’라고 한다. 이 지대를 결정하는 핵심은 우량지와 열등지의 ‘차액’에 있다. 비옥한 땅은 같은 노동력을 기우리더라도 척박한 땅보다 월등 소출이 많다. 그런데 시장의 농업가격은 척박 한 땅, 즉 열등지를 기준으로 매겨진다. 따라서 우량지의 노동은 열등지의 노동에 비해 많은 이윤을 얻게 된다. 이 우량지와 열등지의 등급차가 점점 벌어질 때 즉, 주변의 척박한 토지를 개간하면, 다시 말해 토지의 공급을 늘릴수록 우량지는 초과이윤을 달성하게 된다. 뭐 좀 어렵게 말했는데, 이를테면 서울의 변두리를 개발하면 할수록 서울의 중심 명동 땅값은 그만큼 더 오르게 되어 있다. 공급을 늘렸는데도 가격이 내리기는커녕 더 오르는 것이다. 경기도 성남의 분당을 개발하고, 그것도 모자라 용인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개발한다 하여도 강남의 땅값은 그만큼 오른다. 이런 지대의 원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정부 고위관료 자본가, 지식인들은 오늘도 택지공급을 늘려 부동산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토지란 것이 일반상품처럼 공급에 제한이 없고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재화라면 가능하겠지만, 토지는 절대 그럴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바로 그렇기에 자본주의 일반의 소유라는 성격도 그렇지만 더욱더 토지는 사적 소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본의 집중과 집적이 심할수록 그에 따라 노동자들은 일정한 공간에 더욱더 집중’되며, 따라서 자본은 불어난 몸집을 더욱 키우기 위해 한편으로는 싼 임금을 유지하고 한편으로는 한계지 개발로 불로소득을 실현한다. 높은 지대와 고리대의 이자는 앞뒤를 다투며 민중의 등을 때린다. 그 옛날 이도령이 변사또 앞어서 읊었던 ‘금잔에 넘치는 술은 백성의 고혈’이 지금도 이 남한에 그렇게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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