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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우리사원 우리 스승님 (서울 벽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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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8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2-11-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사원탐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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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7 17:53 조회 1,8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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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원 우리 스승님 (서울 벽롱사)
안으로는 마음닦는 불공, 밖으로는 대자비행을 실천해야 참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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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고, 비는데는 무쇠도 녹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함에 있어 지극한 정성으로 해야 합니다. 지극한 신심이 앞으로 계속 변치마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도하는 동안에 가져야 하는 마음자세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기도를 하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집안에 재앙이 없기를 바라는 기도, 병이 빨리 낫기를 바라는 기도,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기도 등의 이유로 기도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신중기도는 거의 현세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기도, 사업의 성공 또는 건강 등 현세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도가 많습니다. 그러나 같은 일이라도 일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수도 있고, 또는 별 효과를 보지 못하는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도 우리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가 다릅니다.

보살님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입교해서 불공 드리는 데도 어떤 분은 성취했다고 기뻐하는데 다른 한 분은 아무런 효험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됩니 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보살님들이 마음가짐이 다르므로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둥근 보름달이 밤하늘에 두둥실 뜨면서 수많은 강에 달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 보름달의 형상이 일정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강에 나타난 달은 밝고 둥근데 어떤 강물에는 찌그러진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 달은 하나인데, 물에 비친 달의 모습이 다른 까닭은 바로 물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기도의 대상은 같더라도,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맑고 찬란한 강물에서는 둥근 달이 나타나듯이 기도를 성취하는 것이고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마치 탁류가 흐르는 강물에는 둥근달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지 못하는 것처럼 소원성취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항시 고요하고 평온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지속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당에 앉아서 불공할 때의 마음은 한없이 자비로운 부처 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법당문을 나서는 순간 몇 시간 동안 불공했던 한없이 자비로운 마음이 한순간에 없어지고 번뇌 가득한 일반 중생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불공은 법당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 순간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 그리고 분별심과 이기심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생활 속에서 녹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생활속의 마음 다스림이요, 마음을 챙기는 것입니다”


벽룡사 환수원 스승님의 마음 불공에 대한 말씀이 이어진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불교가 아주 쉽게 와 닿는 것 같다.

“불교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불교, 불공이 무어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스승님은 간단하고 명료하게 답하신다.

“우리는 흔히 불교는 어렵고 고리타분하고 관조적이고 산속에서나 있는 뭐 이렇게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외적으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적극적이고 평등하고 내적으로는 마음의 고요함 마음의 평화를 다스리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모든 고통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며 - 예를 들어 복지사업을 통한 나와 이웃을 함께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적극적으로 안아주는 동체대 비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 그러한 자비심은 끝없는 자기의 수행과 정진이 바탕이 되야 합니다. 안과 밖이 한결같아야 합니다. 생활속에서 그러한 훈련을 계속하여 자기의 습으로 자리잡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법당에서는 부처님이고 법당문 나서자 마자 다시 어리석은 중생으로 돌아오는 우를 범하지 않겠지요” 지극히 간단하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간단하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가장 어렵고 가장 힘든 자기와의 싸움임을 조금만 실천해보면 알 수 있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자기를 놓고 - 마음의 움직임을 항시 주시하는- 다니지 말아야 한다.

환수원 스승님은 총기 10년에 총지종과 인연을 맺었다. 혹독하고 용맹정진을 중요시하는 정각원 스승님 밑에서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저마다 많은 사연과 인연이 있어 밀교와 인연이 되었지만 스승님의 인연은 각별하다.

스승님은 부산 해운정사에서 우선 불교와 인연이 되었다. 불교에 귀의는 모두다 사연이 있겠지만 스승님의 사연도 남들과 특별하게 다르지 않았다.

몸이 무척 익했던 스승님은 자신의 건강과 집안의 해탈을 위해 많은 불공을 드렸다. 그러나 몸에 진척은 없고 하루하루 불공에 회의를 느낄 무렵 정각사 신도로 있던 시누가 정각원 스승님을 뵙자고 해서 법회를 나간 것이 총지종과 인연이 되었고 험난한 스승의 길에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진리의 문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은 그동안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지식과 견해를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견해가 꽉 차 있으니 법문이 들어올 자리가 없고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고자 하나 백날 노력한들 헛 고생일 뿐이다”는 정각원스 승님의 법문에 스승님은 한없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나의 안위와 나 하나만 잘되자는 아집에 지금까지 불공을 했구나’ ‘나의 욕심에 불공을 했구나’는 참회는 정진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가져왔 던 욕심을 버리기 위해 새벽, 아침, 오후, 저녁의 사분정진을 한번도 거스림없이 시간을 지켰다.

스승님의 정진에 가벼운 에피소드도 있다. 몇 년 만에 찾아온 추위에 도시는 적막과 음산함으로 가득했다. 그날도 새벽정진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감고 몸을 단정히 하느라 부산을 떨었으나 불공시간이 늦을 것 같아 머리에 물기를 마르기도 전에 집을 나왔다. 간신히 시간을 지켰으나 물 묻은 머리칼은 추위에 고드름이 되어 머리모양이 이상하게 되었다.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새벽불공을 하는데 한 교도가 수건을 건네 주며 ‘몸을 녹이고 불공 하십시오’라는 말에 자신의 몸을 돌아보니 얼굴은 새파랗게 얼어있고 머리는 고드름에 주렁주렁한 모 습이 꼭 죽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 하루는 ‘우리 마누라가 분명히 절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저렇게 미친 사람처럼 매일 불공을 갈 것이다’ 고 생각한 각자님은 스승님을 미행을 했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스승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고 법당까지 들어왔다. 법당에서는 정각원스승님이 법문을 하고 있었으며 그 법문을 듣는 순간 각자님도 제도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후 각자님의 어리석은 오해는 풀리고 오히려 더욱 불공하고 기도하라고 적극 도와주셨다고 한다.

그러한 지극한 지심으로 드린 불공의 덕분이었는 스승님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건강을 되찾으니 모든 일에 자신감과 활기를 되찾았다.

정각원스승님은 항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고 스승님은 기억하고 있다..

“가정에서 여자는 운전사나 마찬가지입니다. 차를 움직이는데는 운전사는 특히 중요합니다. 차를 너무 무리하게 운전하거나 너무 함부로 하면 차는 오래 가지 못하고 고장을 일으킵니다. 자신의 몸처럼 항시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면 차는 고장이 없습니다. 가정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운전사는 바로 여자이며 차는 남자입니다. 여자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남자는 몇 배의 힘을 내는 것입니다.”라는 아련한 법문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환수원 스승님은 항시 강조하신다.

“부처님께서 깨닫고 보니 일체중생이 모두 다 자기와 똑같은 불성을 지니고 있는데 단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많이 배운 사람, 적게 배운 사람, 부유한 사람, 가난한 사람들, 모두에게 불성이 있으며 단지 뭇 중생은 그 불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 불성을 깨닫는 훈련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육바라밀의 실천입니다. 우리는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 바라밀다 등 ‘육바라밀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보살이 육바라밀다의 행 을 성취키 위해 수행하는 6가지 방법으로서 ‘보시에 대한 공양을.

지겨에 대한 계율의 배움’을, ‘인욕에 대한 자비의 닦음’을, ‘정진에 대한 선에 힘씀’을, ‘선정에 대한 번거로움을 멀리함’을, ‘지혜에 대한 법의 즐김’ 을 이야기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실천하면 됩니다. 부처님의 진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으며 진리의 문에 들어오고 안들어오고는 자신의 몫입니다. 한 발짝 들어온 사람만이 신령스럽게 빛나고 있는 부처님의 지혜의 빛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신령스러운 빛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빛나고 있으며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번뇌와 망상으로 눈을 가리고 영원히 어둠에서 나올 줄 모르고 어두운 세상에서 헤매고 있습니다”라고 실천 수행법에 대한 말씀에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너무도 간단하고 너무도 쉬운 답을 보고도 그렇게 행히지 못한 우리 들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지금 벽룡사는 사원 불사가 한창이다. 마음닦는 일이 제일이지만 그래도 여러 교도들이 보다 편안 하고 안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도리인 것 같아 혼자의 몸으로 여러 가지 신경을 쓰신다. 마음의 미혹을 하나하나 벗어버리듯 돌하나 풀 한포기 곱게 곱게 제자리를 찾아준다.


환수원전수님

경북 영천 출신으로 1982년 중앙교육원 아사리과 정을 수료하였으며 정각원 스승님을 은사로 수행

1983년 전주 흥국사

1984년 일광서원당

1990년 서울 벽룡사 주교

1998년 제 7대 중앙종의회 의원

2001년 총지종사회복지재단 이사

       원의원, 전당건설, 교구장

주소 : 서울 관악구 신림본동 16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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